[박재일 칼럼] 신천 대 양재천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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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14  |  수정 2023-08-14 06:58  |  발행일 2023-08-14 제22면
태풍 스쳐간 신천의 위용

여름밤 동성로처럼 붐벼

랜드마크 된 대봉 사장교

신천도 양재천 숲처럼…

산천도 이제 변하는 시대

[박재일 칼럼] 신천 대 양재천
박재일 논설실장

태풍이 몰아친 이곳은 한편 신성하기까지 하다. 둔치 물이 빠지면서 미처 피하지 못해 떼죽음한 새끼 피라미들이 애처롭지만 그런대로 잘 견뎠다. 비슬산 계곡을 훑은 물이 쏟아진다. 물의 질량은 넘친다. 모처럼 강다운 위용이다. 언제부터인가 걷고 뛴 대구의 신천이다. 대백프라자 공사가 한창일 때는 얼마나 깊이 파는지 궁금해 둘러보고서야 둔치로 나간 적이 많았다. 옛 신천 사진들이 전시된 적이 있다. 그건 수성들 서쪽에 그냥 구불구불 흘러가는 보잘것없는 하천, 아니 도랑이었다. 대구판관 이서가 신천제방을 쌓았다 해도 현대적 토목공사의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빨래 방망이질하는 아낙네의 모습이 애처롭다. 다리는 칠성교쯤 어디 몇 군데 있기는 하다. 지금은 어떤가.

지난 여름밤 신천은 차라리 붐볐다. 걷고 뛰는 이들에 애견까지. 동성로보다 많았을 것이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걷다 보면 대봉교 도시철도3호선의 주탑은 마치 항구를 안내하는 등대처럼 다가온다. 강골한 주탑 기둥을 만져보면 최상의 콘크리트 표면이 극히 매끄럽다. 탑을 세우고 케이블로 다리를 당겨 중력을 견디는 사장교 형식의 보기 드문 건축구조물이다. 금호강 와룡대교도 사장교인데 각각 금호강과 신천의 랜드마크가 됐다. 과학기술이 숨어있기에 아름다울 게다. 대봉교에서 중동교 양안은 느티나무, 팽나무, 동백에 심지어 메타세쿼이아까지 있고, 잔디밭도 포진한다. 옛날의 푸른 잔디는 들어가면 안 되는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도 제지하지 않는다. 잔디에 관한 한 우린 풍요 속에 살고 있다. 얼마 전 들렀던 서울의 하천이 떠오른다.

양재천은 서울 서초구와 강남구를 흐르는 하천이다. 그 유명한 도곡동 타워팰리스를 지나며 서울 부촌을 감싼다. 신천 강폭의 반도 안 되지만, 나무가 많다. 하천인지 숲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공간에 무얼 채울까 고민되면 나무를 심으면 실패할 확률이 떨어질 것이란 추정을 해본다. 신천도 나무를 더 심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양재천 북쪽 카페촌은 강변 숲으로 인해 빛난다. 윤봉길 의사 기념관, 삼풍백화점 위령비도 양재천 인근 숲에 자리한다. 양재천은 탄천과 합류해 한강에 도달한다. 탄천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귀한 하천으로 손꼽힌다. 그러고 보니 신천도 남쪽 가창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흘러 금호강에 안기는 영험한 하천이다.

세어보니 신천에는 가창교에서 침산교까지 20개의 다리가 있다. 사이사이 둔치에는 숱한 구조물이 생겼다. 주차장에다 임시 수영장, 테니스장, 게이트볼장, 바둑두는 그늘막까지 쉴 새 없이 들어섰다. 꾸미는 것은 본성이지만 아쉬움이 없지 않다. 지금은 많이 교정됐지만 벤치를 하필 땡볕 아래에 둔다. 나무 그늘이면 좋을 텐데. 아직도 등받이 없는 벤치가 많다. 설치의 배려가 결핍됐다. 대구시가 200억원을 들여 강변 수영장을 만든다고 한다.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미학의 디자인을 요구하고 싶다.

신천 최고의 정원은 몇 군데 있다. 희망교 상류 신천동로 팽나무는 위풍당당하다. 신천 동로 침산교에서 도청교까지 강을 거슬러 차를 몰 때의 순간도 좋아한다. 강물이 마치 도로 위에 떠 있는 듯하다. 신천의 상하류 지표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신천의 현대적 풍광이다. 신천은 금호강, 낙동강 물을 끌어 올린 과학이 숨어있다. 누가 산천은 의구(依舊)하다 했는가. 산천도 변하는 시대다. 도시는 강 위에 떠 있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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