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상훈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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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17 06:10  |  수정 2023-08-17 06:10  |  발행일 2023-08-17 제23면

예로부터 상(賞)과 훈장(勳章)은 쉽게 줘서도, 쉽게 받아서도 안 된다고 했다. 조선시대 단종 임금 때 사육신 가운데 한 명인 하위지(1412~1456)는 생전 수양대군(세조)으로부터 끊임없는 회유를 받았다. 단종 1년, 하위지는 집현전 동료와 함께 '역대병요(歷代兵要·역대 전쟁과 평가를 담은 병서)' 편찬을 끝냈다. 이 공로로 수양대군으로부터 직품 특진의 상훈(賞勳)을 받게 됐다. 그러나 하위지는 단칼에 거절하고 고향인 경북 선산에 내려왔다. 하위지가 수양대군의 불순한 속내를 모를 리 없었다. '임금님이 어직 어리신데, 대군이 상훈을 미끼로 조정 관료의 환심을 사려는 것은 명백히 잘못됐다. 신하들도 그런 유혹에 흔들려선 안 된다'는 게 거부의 이유였다. 가히 '대쪽같은 심지(心志)'라 할 만하다.

현대사에선 고(故) 전두환 대통령이 상훈을 남발했다. '쿠데타 정권'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할 요량이었다. 대표적 사례로 그가 1980년 12월31일자로 수여한 훈장은 모두 52개다. 훈장을 받은 이들은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 진압한 신군부세력이다. 한마디로 '셀프 훈장 파티'다. 결국 훈장 대부분은 훗날 5·18 재평가에 따라 박탈됐다. 애초부터 줘서도 안 되고, 받아서도 안 될 훈장이었다. '새만금 세계 잼버리대회'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가운데 최근 막을 내렸다. 행사를 주관한 전라북도가 이미 지난해 12월 관계 공무원에게 포상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취지는 '공무원 사기 진작'. 기가 찬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엄중한 문책이 있어야겠다.

이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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