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TK, 그 착한 정치인들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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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28  |  수정 2023-08-28 07:03  |  발행일 2023-08-28 제26면
공적윤리, 책임감 가진 이들

정치 포기하면 양아치 득세

내년 4·10총선 8개월 앞으로

누가 살아남을지 품평회

도전할 신인 많아졌으면

[박재일 칼럼] TK, 그 착한 정치인들
박재일 (논설실장)

경영학의 대가인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정치와 권력의 생리에 대해서도 깊은 통찰력을 보인 바 있다. 드러커는 기업이든 공적기구이든 보다 윤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이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예를 들면 더 도덕적이고 사회와 공동체에 책임감을 가진 이들이 정치를 혐오한 끝에 공적 자리를 하수구에 던져버린다면 그다음은 거리의 양아치(guttersnipes)들이 이걸 낚아챌 것이다고 했다.

기자는 정치 지망생들과 마주치는 일이 흔하다. 그들은 정치, 즉 선거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결의를 전해온다. 나는 대개 이런 경우 독려하는 편이다. 공개적으로 언론인을 만나 결심을 전하는 이들은 평균 이상의 도덕성과 결단성을 가진 경우가 많다. 굳이 험난한 여정에 돌입하겠다는데 이를 말리고 기를 꺾을 이유 또한 없다. 합석한 이들은 종종 '정치판, 그 더러운 곳에 왜 뛰어드느냐'고 손사래를 치기도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정치혐오증, 정치인 폄훼증에 물든 이들이 많다.

내년 총선(4월10일)이 8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시중에는 국회의원 품평회가 열린다. 살아남을 의원이 TK(대구경북)에서는 몇 명일까 꼽고 있다. '물갈이는 50% 이상'이라며 열을 올린다. 늘 보아오던 풍경인데 이번엔 더하다. 선거의 궁금증은 '누가 이길 것이냐'인데 그건 없고 오로지 당 공천이다. TK의 특수성 때문일 게다. 현재 25명 TK 국회의원 전원이 국민의힘이다. 이쪽의 공천장은 90%를 넘는 당선 확률을 보장해 왔다.

되풀이되는 물갈이론은 의원들의 중량감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세평이 배경이다. '투쟁성이 약하다, 존재감이 없다'는 불만이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지역 국회의원들은 대개 평탄한 이력을 보냈다. 고시출신 관료나 법조계, 경찰 조직, 학계에서 커온 인물이 대다수다. 신념에 몸을 던져 직업 정치인으로 커 온 경우는 드물다. 야당일 때는 정권을 향해 정면 도전한 장면도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근데 재미있는 점은 개별적으로 만나보면 이들도 나름 '내공'이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제도권 조직에서 오래 몸담아온 경력이 투쟁성을 약화시킬지는 몰라도, 진중한 태도에 나라와 국가에 대한 나름의 가치관이 있다. 다소 착하다는 측면이 흠이 될까.

내년 공천도 과거 패턴을 밟을 것이 틀림없다. 정권은 교체됐고, 170석 넘는 야당에 시달려온 권력 중심부는 고민할 것이다. 정권 색깔에 맞는 수혈이 필요하다. 교체할 의원은 당무감사나 지지율 잣대로 걸러낸다(cutoff). 공천심사위원회가 구성되고 전략공천의 미명하에 누구를 찍을 수도 있다. 인물을 정해놓고 약한 상대를 붙여 여론조사를 하는 방식도 동원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장막 뒤의 치열한 로비가 있을 게다. 공식 선거보다 더 적나라한 경쟁일 수 있다.

다시 돌아가면 권력은 내가 관심이 없으면 자격 없는 타인이 그 자리를 꿰찬다. 대중이 정치를 혐오하면 혐오스러운 정치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이론이다. 야심이 있고, 사회와 국가에 대한 공적 책임이 강하다고 스스로 느낀다면 여야 불문하고 정치판에 뛰어들라고 나는 권하고 싶다. 유권자는 성에 차지 않을지 모르지만 선거가 혁명이 아닌 다음에야 발전은 점진적일 수밖에 없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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