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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승윤의 뮤직비디오를 팬들이 직접 만들어 화제다. 팬들은 뮤직비디오 제작과정을 기록한 독립영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도 함께 만들었다. 가수 이승윤과 권하정·구은하·김아현. <시네마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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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승윤. <시네마달 제공> |
가수 이승윤의 뮤직비디오를 팬들이 직접 만들어 화제다. 팬들은 좋아하는 노래를 선곡하고, 음악에 어울리는 콘티를 작성하고, 촬영소품을 챙기고, 편집까지 참여했다. 처음에는 소박한 팬심과 열정에서 시작한 일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커져갔다. 우선 뮤직비디오를 만들겠다는 계획은 제작과정을 담은 독립영화도 함께 만들자로 수정됐다. 작품에 세심한 공을 들이니 제작기간은 점점 길어지고, 인건비와 물가는 쑥쑥 치솟았다. 결국 완성되기까지 3년이라는 적잖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클럽에서 노래하던 무명가수는 전국민이 알아보는 인기가수가 됐다.
오는 9월 6일 개봉하는 영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는 마음과 마음으로 소통한 청춘들의 도전기다. 좋아하는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직접 만들어주고 싶다는 '팬심'과 이를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진심'으로 화답한 가수가 함께 만들었다. JTBC '싱어게인-무명가수전'에서 우승한 가수 이승윤과 무명가수 때부터 그를 응원하고 사랑한 권하정·김아현·구은하 등 제작진이 참여했다.
영화는 스스로를 '듣보인간'(듣도 보도 못한 사람, 즉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인기를 끌지 못한 사람)이라고 칭하는 영화과 출신 세 친구의 도전기를 담았다. '하정'은 대학을 졸업 후 자신만의 동굴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 하정에게 위로를 건넨 것은 다름 아닌 인디 가수 이승윤의 노래다. 하정은 무턱대고 친한 친구 '아현'에게 "나, 이 가수랑 한 번 작업해보고 싶어"라고 말하고, 아현은 바로 "그래, 우리 한 번 해보자"로 응답한다. 진심을 담은 편지를 전달하고, 승윤의 답장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이들에게 마침내 승윤이 화답하면서 상황은 급전개 되는데….
이승윤은 이 때 어떤 심경으로 팬들의 제안을 받아들였을까. 이승윤은 "그즈음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주겠다는) 비슷한 제안을 많이 받았는데 묘하게 시혜적으로 보여 모두 거절했다. 하지만 세 분이 건넨 편지를 읽고서 이분들이라면 함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엄청난 불신론자'라며 스스로를 표현한 그는 "그런 제안이 오면 보통 사기라고 생각하고 안 믿어요. 그때 그런 분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고요. 근데 세 분은 '네 음악을 위해 내가 어떻게 해주겠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우리 같이 영차영차 힘내서 만들어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동등한 입장으로 저를 바라봐준다고 생각해 신뢰가 갔죠."라며 덧붙였다.
촬영을 한 2020년 여름은 이승윤이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에 출연해 대중의 인기를 얻기 전이다. 당시 그는 영화 제목처럼 듣보인간, 즉 무명에 가까웠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힘들게 가수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 이승윤은 "누군가가 꾼 꿈에 제 노래가 일조해 영광스럽습니다. 제 입장에선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 사활을 걸고 태운 불꽃이 다른 누군가의 불꽃에 닿으면서 조금 더 커진 거 같아요."라며 이번 작품에 의미를 부여했다.
팬들은 열정으로 작업을 시작했지만 제작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세 사람이 대학 시절 영화만 만들어봤을 뿐 뮤직비디오 제작 경험은 전무했던 터라 촬영 과정에는 사소한 것 부터 큰 것까지 우여곡절이 뒤따랐다. 장비나 장소 선정에 어려움이 있었고, 카메라 촬영 방식도 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모임 인원 제한까지 생겨 촬영일을 연기하기도 했다.
모두가 안될 거라고 말할 때, 용감하게 도전해 비로소 작품을 완성한 제작진의 소회는 어떨까. 자신을 '성덕'(성공한 덕후)라고 소개한 권하정 감독은 "좋아하는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찍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광이고, 그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낼 수 있다는 것도 뜻깊은 일"이라며, "개봉까지 험난한 과정을 겪으며 내가 영화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느끼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김아현 감독도 "평소 희망이 곧 긍정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목표를 설정하며 살아왔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희망은 좌절과 슬픔이 있어야 희망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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