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경남 밀양 표충사 한계암, 소박한 한칸 법당…불교예술 거장 '혜각·석정·수안' 6년간 묵언수행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
  • 입력 2023-09-01  |  수정 2023-09-01 08:11  |  발행일 2023-09-01 제15면
인간문화재 혜각 스님이 1966년 중창

불상은 금강산 유점사서 모셔와 개금

암자 오르는 계곡 금강동천이라 불려

물소리·기암·폭포…기분 좋은 오솔길

[주말&여행] 경남 밀양 표충사 한계암, 소박한 한칸 법당…불교예술 거장 혜각·석정·수안 6년간 묵언수행
금강폭포 위로 갈색의 난간이 언뜻 보이는 암자가 풍취도 좋게 숨은 듯 앉았고, 그 아래 숲으로부터 파석들로 쌓은 돌탑이 솟아나 있다.
[주말&여행] 경남 밀양 표충사 한계암, 소박한 한칸 법당…불교예술 거장 혜각·석정·수안 6년간 묵언수행
요사채와 전국에서 가장 작다는 법당.

활엽 고목들의 숲을 지나, 개울을 가로지른 연꽃 모양의 홍제교를 지나면 표충사 입구다. 문 앞을 스쳐 왼쪽으로 난 콘크리트 길 따라 집채만 한 바위로 선 효봉선사 사리탑을 지난다. 그러면 곧 한계암 가는 좁은 길에 닿는다. 하늘이 가려진 오솔길이다. 돌이 많은 산이구나. 숲길은 돌길이고 제법 경사진 오름길이다.

◆금강동천을 거슬러

그러나 잔뜩 긴장하여 발 디디지 않아도 좋다. 누굴까, 이 돌들을 이처럼 잘 도닥여 놓은 이는. 두들기고 각을 맞추어 '이것은 길' 이라 선전하지 않았어도 분명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배인 길이다. 다독일 수 없는 곳에는 과하지 않고 안전하게 나무 데크가 놓여 있다. 사람의 손이 지나치다 씁쓸한 마음도 없고 자연이 너무 거칠다 무서운 마음도 없다. 사뿐한 걸음에는 어딘지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분이 있다. 어느 해인가 떨어진 누런 솔잎들이 길섶에 쌓여있다. 부드럽게 소리도 없이 폭닥하다.

계곡 왼쪽의 가장자리를 밟으며 오른다. 계류의 맑은 소리를 따라, 그 소리의 원천을 찾아가려는 듯, 그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꼭 붙어 서서 간다. 시각적인 압도 없는 신선한 기암들이 곁을 따르고, 환한 얼굴의 너럭바위들은 층층으로 앞선다. 길의 대기는 짙은 초록, 골짜기는 밝고 희다. 이 골짜기를 금강동천이라 부른다. 계곡의 거대한 바위에 '금강동(金剛洞)'이라는 글자가 흰 페인트로 적혀 있다. 가까운 골짜기에 내려선다. 물속은 약간 붉고 또 초록이거나 청동빛이다. 물은 다양한 속도로 쉼 없이 흐른다. 약간의 굴곡을 만들며 자작거리다 다시 재빨리 흐르는 물속에 손을 담근다. 차다고 머리가 감지하는 순간 손은 동상처럼 시리다. 한계, 차가운 계곡의 흐름은 손이 느끼어 머리에 전달하는 시냅스 간격보다 더욱 촘촘하고 빠르다.

양쪽으로 돌을 쌓아올린 나지막한 벽이 문 없는 문을 만들고 있다. 그곳을 통과하자 경내에 들어선 듯, 이제 곧 암자에 닿겠단 생각이 앞지른다. 그리고 잠시, 숲이 열리면서 금강폭포의 하얀 물줄기가 돌아선 사람의 눈물처럼 흐른다. 왼편으로는 은류폭포가 소리 없이 흠뻑 계곡을 적시고 있다. 둘은 여기에서 하나 되어 금강동천을 내달린다. 그 사이 수풀 우거진 절벽 위로 짙은 갈색의 난간이 언뜻 보이는 암자가 풍취도 좋게 숨은 듯 앉았고, 그 아래 숲으로부터 다듬지 않은 파석들로 쌓은 돌탑이 솟아나 있다. 탑은 날씬하고 위태로워 보이지만 '걱정할 것 없다'는 듯 무심하다. 열린 숲의 옆얼굴을 스치며 다시 잠시, 그예 이마보다 조금 높은 곳에 태양 빛의 토석벽과 검은 돌담이 숲 그늘에 앉아있고 파스텔 톤의 하늘색 슬레이트 지붕이 나뭇가지에 걸려있다. 한계암(寒溪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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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암 입구. 태양빛의 토석벽과 검은 돌담이 숲 그늘에 앉아있고 파스텔 톤의 하늘색 슬레이트 지붕이 나뭇가지에 걸려있다.
[주말&여행] 경남 밀양 표충사 한계암, 소박한 한칸 법당…불교예술 거장 혜각·석정·수안 6년간 묵언수행
한계암 가는 길. 시각적인 압도 없는 신선한 기암들이 곁을 따르고, 환한 얼굴의 너럭바위들은 층층으로 앞선다. 이 골짜기를 금강동천이라 부른다.
[주말&여행] 경남 밀양 표충사 한계암, 소박한 한칸 법당…불교예술 거장 혜각·석정·수안 6년간 묵언수행
좁다랗고 얇은 콘크리트 다리 아래로 은류폭포가 흘러내린다. 돌계단으로 이어져 오래 사람의 길이었을 다리는 이제 풍경이 되었다.

◆한계암

계곡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를 건넌다. 옆에는 좁다랗고 얇은 콘크리트 다리가 있다. 돌계단으로 이어져 오래 사람의 길이었을 다리는 이제 풍경이 되었다. 살짝 열린 대나무 사립문을 옆걸음으로 들어선다. 왼쪽 토석벽의 슬레이트 지붕은 창고 같다. 오른쪽 돌담 안쪽에는 수돗가가 자리한다. 그리고 요사채가 분명한 건물이 하나, 손바닥만 한 계단 세 칸을 오를 정도로 돋움 된 작디작은 법당 하나, 그리고 폭포 바로 곁에 자리한 난간을 가진 건물 하나가 있다.

한계암은 밀양 표충사의 산중 암자로 원래는 비비정(飛飛亭)이라는 정자였다고 한다. 인간문화재인 혜각스님이 1966년 가을에 중창한 암자로 불교 예술계의 거장인 '단청에 혜각' '탱화에 석정' '선서화에 수안' 스님이 이곳에 거했다. 1964년 표충사 주지였던 석정스님은 주지직을 사임하고 둘도 없이 절친했던 혜각스님과 함께 이곳에 들어앉았는데 '정신병 환자 수용소'라는 간판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두 분과 석정스님의 제자인 수안스님은 함께 6년간 묵언 수행을 했다 한다. 석정스님은 참선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그림이 무엇일까 궁리하다 원상(圓相)의 묵화(墨畵)를 그리기 시작했고 이후 달마, 한산습득, 심우도 등을 그렸다고 전한다. 원상은, 그러니까, 동그라미다. 간결하고 단순하고,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점의 연속이고 영원이며 완전성이다. 불교의 원만, 원각, 원통, 또는 원공(圓空)의 개념과 상통하며 원의 형태를 빌려 불법의 오묘한 진리를 나타내기 위한 하나의 표징이다. 6년의 묵언과 동그라미.

한계암과 금강폭포, 금강동 등의 이름은 모두 혜각과 석정 스님이 수행하던 금강산과 닮았다고 해서 붙였다고 한다. 한계암 법당은 1칸으로 지어진 전국에서 가장 작은 법당으로 알려져 있는데, 법당의 불상은 금강산 유점사에 있던 철불을 혜각스님이 모셔와 개금했다고 전한다. 법당과 요사채의 주련에 한산자(寒山子)의 시가 적혀 있다. '한산의 길은 아득하고도 먼데/ 차가운 계곡물은 콸콸 흘러간다./ 새 소리는 늘 들려오는데/ 사방은 고요하여 인적은 없구나./ 차가운 바람이 간간이 얼굴에 불어오는데/ 분분히 흩날리는 눈이 몸을 덮는다./ 아침마다 해는 뜨나 보이지 않고/ 해가 바뀌어도 봄이 왔다가 갔는지도 모르겠다.' 이 오언율시의 첫 음은 '묘묘, 락락, 추추, 적적, 석석, 분분, 조조, 세세'다. 읊을수록 동그라미가 떠오른다. 고개를 휘저으며 그저 생각한다. 아주 오래전 한산과 습득과 풍간이 숨어 살았고 조금 오래전에는 석정과 혜각과 수안이 한계에 살았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밀양 나들목으로 나와 언양, 울산방향 24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표충사 이정표가 있다. 단장면 지나 금곡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표충사다. 표충사 입구 왼쪽으로 효봉선사 사리탑을 지나 1.5㎞ 정도 오르면 한계암이다. 표충사 입장료는 없고 주차비는 2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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