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요! 포항 전통시장 감성여행 .4] 큰동해시장

  • 류혜숙 작가
  • |
  • 입력 2023-09-14 07:27  |  수정 2023-09-14 08:50  |  발행일 2023-09-14 제10면
주택가 비집고 들어서면 눈이 탁 트이는 '광장'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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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남구 해도동에 위치한 큰동해시장은 1만여㎡ 규모로, 150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 아케이드 등 시설현대화 사업을 완료했고, 전통시장 중 유일하게 자체 배송플랫폼인 '달려라 큰동해'를 운영한다.
아케이드가 아주 높다. 빛이 환해서 광장처럼 시원하다. 통로에는 블록이 깔려 있어 장바구니카트도, 유모차도, 휠체어도, 발바닥도 편안하다. 포항 남구의 큰동해시장. 해도동 포항고속터미널 뒷골목에 촘촘하게 들어서 있는 단독주택과 빌라들을 비집고 들어오면 큰동해시장이 번쩍 나타난다. 주거지 한가운데 자리한 것 치고는 규모가 꽤 크다. "우리 시장이 오래됐지요. 40년쯤 됐을걸. 옛날, 옛날부터 있던 시장이요. 아케이드 하고 정비한 것도 한 10년은 됐지, 아마."

남구 해도동 고속터미널 뒤편 자리
150개 점포 들어선 복합상가형시장
아케이드·보도블록 등 시설 현대화
유모차·휠체어 끌고도 장보기 편해


4000명 넘는 고객회원 포인트 혜택
전통시장 유일 전용 배송앱도 운영
쉼터 '사랑방'에선 다채로운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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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동해시장에는 농산물부터 화장품, 활어회, 건어물, 각종 먹거리, 숙녀복, 방앗간, 미용실, 건강원, 의상실, 공인중개사까지 없는 게 없다. 인근에는 40면 규모의 공영주차장도 갖춰져 있다.
◆남구를 대표하는 큰동해시장

아케이드 기둥 곳곳에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해양수산부의 캐릭터이자 큰동해시장의 마스코트인 바다요정 '해랑이'란다. 그림은 포항 꿈틀로 예술가들의 솜씨다. 앗, 떡집에 해랑이가 있다. 치즈를 품은 해랑이 떡이다. 인기가 많아 전국으로 배송된다고 한다. 서너 군데 반찬가게도 바쁘다. 세상에 반찬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자연산 전문 횟집은 쉴 새가 없다. 모둠회 한 팩이 5천원이라니 믿기 어려운 가격이다. 족발집의 부추냉채족발은 벌써 매진이다. 딸기상회의 산딸기 빵은 포항에 왔다면 반드시 구매해야 하는 품목으로 이름나 있다. 포항 장기의 특산물인 산딸기로 만든 건강한 빵이다. 식육점에서는 젊은 청년이 육회거리를 사고, 물건들이 안다미로 쌓인 만물가게 앞에는 한 아주머니가 생각에 빠져 있다. 건어물 가게의 모둠 안주세트는 신박하다. 고소한 튀김냄새, 떡볶이의 맛깔스러운 빨간 빛깔에 손이 살짝 떨린다. 시장 안 골목 안쪽으로 또 다른 공간이 나타난다. 광장형 분식 골목이다. 식사 때도 아닌데 국수 그릇에 코 박은 사람들 여럿이다.

포항 남구 해도동에 있는 '큰동해시장'은 1980년대 복합상가형 시장인 동해시장을 중심으로 주변 상권이 힘을 모아 자연적으로 형성됐다. 1만여㎡ 부지에 150개의 점포, 190여 명의 상인이 연간 95억여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하루 평균 2천여 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 좋은 시장이다. 시작은 오래되었지만 시장 등록은 2008년에 이루어졌다. 2012년에는 아케이드 등 시설현대화 사업을 완료해 비가 와도 장을 보는 데 불편이 없다. 지금도 오래된 2층 콘크리트 상가 벽면에 '동해시장'이라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죽도시장이 있고, 15분 거리에는 대형마트도 있다. 그러나 동해시장은 사라지지 않고 큰동해시장이 되었다. 전통시장의 단점인 주차도 이곳은 큰 걱정이 없다. 주택가에 있는 데다 40면의 공영주차장도 있다. 큰동해시장은 포항 남구를 대표하는 시장이고 포항에서 둘째로 큰 시장이다.

1982년부터 있었다는 수제 떡갈비 집에는 대왕꽈배기도 있고 생과일주스도 있고 삼진어묵도 있다. 참기름집과 농부가 잡은 생선가게도 있고, 텔레비전 방송에 소개됐다는 찹쌀꽈배기 집과 분식집도 있다. 최고의 한우를 자랑하는 식육점이 있고 온갖 것들을 파는 마트도 있다. 이불도 있고 소파 천갈이도 하는 커튼 집이 있는가 하면 비와이씨 메리야스 점도 있고 옛날가마솥 통닭집과 닭갈빗집도 보인다. 농산물 상회들과 화장품 가게, 횟집, 건어물집, 족발집, 즉석두부가게, 명절과 제사 음식도 하는 튀김가게, 만물상회, 떡집, 과자점, 과일집, 숙녀복, 방앗간, 미용실, 건강원, 의상실, 공인중개사까지 없는 게 없다. 통로 한 쪽에는 '진심저울'이 놓여 있다. 오직 정량판매, 정직한 판매로 신뢰할 수 있는 큰동해시장을 만들어가겠다는 상인들의 진심이 담긴 자율계량 저울이다. 진심저울이 올려져 있는 커다란 상자는 '고객신문고'다. 칭찬하고 싶은 것, 불만인 것, 불편한 것, 모두 이야기할 수 있는 고객들의 소리함이고 소통의 창구다.

◆전국 최초의 '고객 회원제'와 모바일 장보기 앱 '달려라 큰동해'

큰동해시장 옆으로 해동로가 형산강으로 이어진다. 과거 1970~80년대 포스코 근로자들이 출퇴근하던 자전거길이다. 큰동해시장이 자리한 해도동은 형산강 하류의 저습지대로 옛날 갈대숲과 염전이 펼쳐진 땅이었다. 포항종합제철의 시작과 발맞추어 1960년대 후반 짧은 기간 내에 주거지역으로 변모했고 포스코와 연관 공단 종사자들이 해도동 일대에 주로 거주하면서 시장은 번창했다. 제철소와 공단 근로자들이 들락거렸던 칼국숫집이나 분식집 등 몇몇 가게들은 지금도 시장을 대표하는 맛집으로 남아 있지만 다른 전통시장과 마찬가지로 2000년 이후 큰동해시장의 상권은 많이 축소됐다. 그러나 30~50대 젊은 층으로 구성된 상인들은 똘똘 뭉쳐 고객이 만족하고 소통하는 시장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큰동해시장은 평범한 전통시장이 아니다. 진심저울과 고객 신문고에서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큰동해시장에는 4천명이 넘는 고객 회원이 있다. 전국 전통시장 최초의 고객회원제다. 회원들은 구매금액 5천원 마다 100원의 포인트 엽전을 받는다. 엽전은 철의 도시 포항답게 상인회가 특별 제작한 것으로 시장 내 어느 점포에서든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또한 큰동해시장은 전통시장 중에서는 유일하게 자체 배송플랫폼인 '달려라 큰동해'를 운영하고 있다. 고객회원제 시스템을 활용한 전용 배송 서비스로 언제라도 편안하게 집에서 시장 쇼핑을 할 수 있다. 이용자는 1천800명이 넘는다. 매월 마지막 주는 고객회원 할인 주간이다. 매주 토요일에는 '세일거리'가 열린다. 이러한 다양한 변화와 혁신으로 시장의 매출이 약 40% 이상 상승했고 한사람이 구매하는 가격을 측정하는 객단가 또한 약 50% 이상 급상승했다. 변화는 2018년부터다. 시작은 특성화 첫걸음 사업으로 고객친절, 원산지표시, 위생과 청결, 고객선 준수, 진심저울 등 시장 문화에서 기본이 되는 것부터 꼼꼼히 살폈다. 그 성과를 인정받아 2019년부터는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을 진행하게 됐다. 지역 및 시장의 특성을 고려해 다양한 시장 활성화 사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고객회원제'와 배달 앱 서비스인 '달려라 큰동해', 그리고 큰동해 사랑방이다.

◆고객을 위한 문화공간 '큰동해 사랑방'

시장 안에는 고객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큰동해 사랑방'이 있다. 쉴 수 있고, 화장실도 있고 시장에서 구매한 먹거리를 먹을 수도 있다. 전자레인지도 갖춰져 있고 그릇이 필요하다면 용기 자판기를 이용하면 된다. 기타 수저 및 취식 집기류는 구매점포에서 제공해 준다. 휴대전화기를 충전하거나 갑자기 정보 검색이 필요할 때 컴퓨터를 이용할 수도 있고 와이파이는 당연하다.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진한 커피 향이 풍겨 온다. 커피나 음료가 필요한 고객들을 위한 사랑방 카페다. 카페에서는 큰동해시장의 특산물인 산딸기빵과 다양한 디저트도 판매하고 있고 작은 도서관도 마련돼 있다. 모임이나 파티, 회식 등 각종 행사를 위한 공간도 있다. 영화를 상영하거나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는 빔 프로젝트가 있고 노래방 기기와 음향시설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큰동해 사랑방에서는 포항문화재단과 함께하는 문화교실이 운영되고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보드게임과 케이크 만들기, 아빠와 함께하는 요리교실, 고객회원 노래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거의 무료로 진행된다. 해마다 어린이 그림그리기 대회, 동아리 경연 대회, 팔씨름 대회, 제기차기 대회, 최장거리 가래떡 썰기, 박 깨기 등의 고객 감사 이벤트도 연다. "대박이에요!" 큰동해시장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포항맘'들의 커뮤니티는 들썩들썩한다. 큰동해 사랑방은 단순한 고객 쉼터가 아닌 고객을 위한 복합 문화 공간이다.

큰동해시장의 가장 큰 자랑은 상인들 간의 단합이고 고객과의 소통이다. 시장 행사 때면 철제 난타 상인동아리가 솜씨를 뽐낸다. 밤에는 자율방범소방대가 순찰을 돈다. 119소방대원들로부터 응급상황발생 시 안전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전수받은 대원들이다. 부녀회에서는 어려운 이웃 돕기, 무료 급식소 지원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시장 상인들이 틈틈이 한 자 한 자 작성한 글자를 기반으로 제작한 폰트도 있다. 큰동해시장 시장체, 사랑체, 해랑체다. 올해부터는 디지털 전통시장 육성사업도 준비 중이다. 큰동해시장만의 특산품과 밀키트 등을 개발할 예정이다. 시장에서 오만가지 일이 일어난다. 들썩들썩.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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