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단식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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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9-15 06:46  |  수정 2023-09-15 06:57  |  발행일 2023-09-15 제27면

옛 선조들은 곡기를 끊는다는 뜻으로 '절곡(絶穀)'을 행했다. 자식이 병치레 잦은 부모의 아픔을 함께 나눈다는 마음으로 절곡했다. 드문 일이지만 먼저 세상을 떠난 지아비를 따라 죽고자 절곡한 아내도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충직한 신하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며 절곡한 경우가 아니겠나. 무소불위(無所不爲)에 대한 약자의 저항과 분노 수단으로써. 절곡은 지금의 '단식(斷食)'이다.

단식의 고통은 어느 정도일까. 1950년대 프랑스의 유명 여성 모델 마르셀 피숑. 그녀의 '단식 자살'은 지구촌에서 오랫동안 회자됐다. 1985년 64세 나이로 절명했다. 무려 열 달 만에 그녀의 주검이 발견됐다. 프랑스 국민에게 더욱 충격을 준 것은 그녀가 남긴 '단식 자살 일기'였다. '단식 17일째: 변기에 앉아 있기가 점점 고통스럽다. 심장이 텅 빈 것 같다.' '32일째: 이 더러운 세상에 저주 있어라. 수박 한 조각을 얻을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아 버리겠다.', '45일째: 이제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다.' 시간 흐름에 따른 고통의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최근 한 라디오 프로에서 "2018년 단식 때, 사흘이 지나니 오장육부가 틀어지더라. 7~8일째엔 숨이 가쁘고 별도 보였다. 몰골이 처참해졌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이 보름을 넘겼다. 그가 '출퇴근 단식'을 할 때부터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민주당 안팎은 물론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도 단식 중단을 요청했다. 출구는 마련됐다. 이쯤에서 접는 게 맞다.

이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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