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대 박사의 '똑똑한 스마트시티·따뜻한 공동체'] 걷는 도시, 행복 도시(Happy City)

  • 김희대 대구TP 글로벌협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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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9-15 08:40  |  수정 2023-09-15 08:40  |  발행일 2023-09-15 제25면
뉴욕 거리, 경험의 밀도 높이는 블록 설계…1분마다 새 스트리트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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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2019년 120조원을 투자하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드는 SK하이닉스를 유치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 간 경쟁이 치열했다. 최종 선택지는 경기도 용인이었다. 이유는 인력수급의 용이성과 삶의 질을 높이는 정주여건이었다. 도시의 고민이 깊어진다.

삶의 질을 높이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도시계획전문가 찰스 몽고메리(Charles Montgomery)는 그의 저서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에서 공공보건, 심리학, 행동경제, 신경과학, 사회학, 건축학 등의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설계한 'Happy City(행복 도시)'를 제시한다. 그는 행복 도시를 '모든 사람이 친구, 가족, 낯선 사람과 인생에 의미가 있는 유대를 맺고 강화할 수 있도록 돕는 도시'라고 말하고, '걷기 좋은 도시'를 행복 도시의 가장 필수 요소로 규정하였다. '행복 도시'는 스마트시티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걷기 좋은 스마트시티를 위해 도시디자이너는 다음의 몇 가지를 도시 설계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우선, 도로와 사람이 커뮤니케이션 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높은 고층건물로 둘러싸인 뉴욕의 거리는 삭막하게 보이지만 사람들이 걷는 동안 매1분마다 새로운 스트리트를 만나면서 경험의 밀도를 높여준다. 비결은 블록 크기에 있다. 뉴욕시에 한 블록의 크기는 대략 가로 길이 250m에 세로 길이 70m 정도다. 서울 강남구 한 블록의 길이가 600m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 차이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사람의 이동이 빈번한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더 재미있는 현상들이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역에서 400m(걸어서 5분) 안쪽을 균일하게 역세권으로 본다. 하지만 실제 활기가 넘치는 구역은 100m 공간 안쪽이다. 사람들은 시야에 사람들이 보이는 공간으로만 움직이며 유기적으로 뭉친다. 유기적인 군집을 만드는 세밀한 장치들, 가령 놀이시설, 탁구대를 설치하기만 해도 거리 활기가 달라진다.


한 블록이 대략 가로 250m·세로 70m
삭막해 보이지만 도로·사람 소통 활기
상호교감 가능한 이상적인 사회적 거리
건물~사람간 3~4.5m, 높이는 4층까지

걷기 좋은 도시는 행복 도시 '필수요소'
행복 도시는 스마트시티 지향점이기도
걷기 좋은 도시에서의 스마트시티 기술
빠름보다 다양한 교통수단 접근 쉽게



두 번째로, 건물배치와 보행자의 상호작용을 설계한다. 사람들은 상호작용하는 요소가 많을수록 스트레스가 내려간다. 인간은 숲처럼 복잡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하여 왔다. 시각적인 정보가 부족하면 인간 뇌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사람은 풍경이 단조로운 큰 거리를 지나갈 때 스트레스와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진다. 캐나다에 있는 '해피시티 연구소'는 시애틀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자원봉사자가 지도를 들고 활기찬 공간과 빈 벽만 있는 공간에서 길 잃은 연기를 하도록 하고, 사람들이 낯선 사람에게 어떻게 도움을 주는지를 관찰하였다. 실험결과 활기찬 도로에 있는 사람들이 낯선 사람에게 7배 더 많이 휴대폰으로 길 안내를 도와주었으며 4배나 더 많은 사람들이 목적지까지 동행해 주었다. 상호작용 공간의 활력은 다른 사람에 관대한 태도를 결정한다. 인간은 건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체감한다. 도로와 건물 간의 거리가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까우면 교감이 없거나 프라이버시의 위협을 느낀다. 건물과 사람 간의 거리는 3~4.5m, 높이는 4층까지가 상호 교감할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적 거리다.

세 번째로 걷는 도시를 위한 다양한 유인 장치를 설계한다. 골목 특성을 드러내는 전통적인 디자인 요소, 작은 이벤트, 팝업 매장, 불규칙한 배치의 벤치 등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우연성을 만나는 기회를 제공한다. 단위당 점포의 숫자도 중요하지만 점포의 출입문 개수도 이벤트의 밀도를 높이는데 기여한다. 이벤트 밀도가 높아지면 보행자에게 권력이 이양된다. 보행자의 선택권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한편 로컬크리에이터는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도시자산이다. 로컬크리에이터는 지역의 자연환경, 문화적 자산을 소재로 창의성과 혁신을 통해 사업적 가치를 창출한다.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실험하며 골목으로 사람들을 불러오는 중요한 매개자이다.

차량의 속도를 시속 20㎞ 이하로 운영하는 보행자우선도로나 보행자전용도로는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 모은다. '차 없는 거리'는 골목 상인들과 끈질긴 대화가 필요하다. 상인들 입장에서 보면 차 없는 거리보다 공용주차장을 늘려 사람들에게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손쉬운 방법이다. 자동차 없는 거리를 홍보하고 사람을 몰리게 하면서 차가 없어도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성공경험을 상인들이 체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도시디자이너는 걷기 좋은 도시를 지원하는 스마트시티 기술을 설계해야 한다. 대개의 경우 걷기 좋은 도시에서 스마트시티 기술은 배경으로 숨어서 작동한다.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끼는 지점과 스마트시티 기술의 상관관계에 대한 면밀한 고찰이 필요하다. 빠른 교통수단이 행복지수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혼잡한 교통으로 스트레스를 가져올 수 있다.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행위가 행복을 만든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걸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어디로, 얼마나 갈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걷기 좋은 도시에서 스마트시티 기술은 빠른 교통수단보다 퍼스널 모빌리티 등 다양한 교통수단에 접근을 쉽게 하고 교통수단 이용금액 결제를 하나의 카드로 통합처리하는 모빌리티 서비스(MaaS)를 제공하는 등 걷는 행위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집중한다. 사람들의 만남을 촉진하는데도 스마트시티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위성지도를 기반으로 스마트폰을 통해 어디에 사람들이 운집하는지를 알려주고, 현재 나의 위치주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벤트와 로컬 크리에이터에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도시 곳곳에 설치된 스마트 센서를 통해 도시정보망을 구축하여 인구의 유동량과 교통 흐름을 분석하고, 다양한 도시 문제를 스마트하게 해결하도록 도와준다. 또한 거리 전역에 설치된 스마트가로등과 폐쇄회로(CC)TV는 경찰이나 119센터와 연동하여 사람들이 안전하게 거리를 걷도록 지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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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대 (대구TP 글로벌협력센터장)

지금까지 정책은 사람 중심의 스마트시티 구현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개발중심 어바니즘을 추구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보여 왔다. 근본적으로 아파트 중심의 단절된 문화와 경쟁적 환경을 추구하면서 공동체와 사람중심 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은 형용모순이다. 지역사회의 문제와 도시의 쇠퇴를 깊이 연구한 미국의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는 '이상적인 도시는 걸어 다닐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도시의 당면한 모든 문제가 기술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모여 있음으로써 해결된다는 굳건한 그녀의 믿음 때문이다. 우리를 더 풍요롭고 더 똑똑하며, 더 자연친화적이며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도시를 위해 사람이 만나고 모일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스마트시티 기술은 도시에 사람을 모으고 커뮤니티를 구축하는데 가장 우선적인 목표를 두고 봉사해야 한다.

〈대구TP 글로벌협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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