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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진 변호사 |
지난 3월16일자 칼럼에 '함께 글을 쓴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 바 있다. 그 칼럼에서 나는 옛 동료 변호사(편의상 'A'라고 한다)가 책을 낸 이야기를 전하면서 우리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할 때 '글터디'라는 이름으로 함께 글을 썼던 시절을 추억했다. 같은 제목의 후속편인 이 글은 우리 사무실 글터디의 또 다른 멤버 변호사(편의상 'B'라고 한다)가 모두가 부러워하는 더 좋은 일자리를 잡아 우리 사무실을 곧 떠나게 된 일을 계기로 함께 글 쓰는 것의 좋은 점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하려고 쓴다.
5년 전 나와 A가 처음 글터디를 시작했고, 그 이듬해 B가 합류했다. 우리 셋은 모두 같은 사무실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변호사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각자 성장해 온 사회적·문화적·시대적 환경이 매우 달랐다. 지방에서 태어나 지방에서 대학교를 나오고 그 지방에서 15년 직장생활을 하다 로스쿨이 개원하던 해 운 좋게 로스쿨에 입학해 40대에 변호사가 된 나와는 대조적으로 서울내기인 B는 서울 강남의 어느 여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국내 최고의 명문대 법대를 졸업한 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전형적인 엘리트 법조인 코스를 밟아온 20대 젊은 변호사였다. B는 나와 변호사 기수로는 6년 차이지만 나이로는 열여섯 살 아래였다. 나이로는 나와 B 중간에 있는 A는 시골 산골에서 할머니 손에 자라며 공부와는 담을 쌓은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지방 사립대 법대에서 뒤늦게 공부에 소질이 있음을 깨닫고 사법시험을 통과했다.
함께 글을 쓰는 모임의 가장 좋았던 점 중의 하나는 이렇게 서로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변호사가 되기까지 경험한 세계가 매우 다름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이모-조카뻘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친구로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지인' 말고 친구, 그러니까 기쁜 일은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어려울 때 고민을 이야기하고 서로 위로해주고 조언해 줄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이다. 서로의 글을 읽고 그 글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글터디는 단순히 글만 같이 쓰는 모임이 아니었다. 동료가 쓴 글을 읽다가 내 속에 깊이 잠들어있던 어떤 상처가 깨워지기도 했고, 생각지도 못한 시각으로 지난 일을 다시 보게도 되었다. 글터디 중의 그런 수다가 일상의 삶에도 영향을 주었기에 우린 글을 통해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뜬금없이 들리겠지만, 나는 가끔 우리 변호사 사무실을 배경으로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는 상상을 해 본다. 주인공은 나와 A, B, 세 사람이다. 변호사가 된 과정도, 살아온 문화적 배경도, 경험한 시대적 배경도 다른 세 사람의 일과 글터디가 드라마의 소재다. 드라마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온갖 종류의 '세상에 이런 일이'식의 형사사건이 에피소드별로 등장하지만, 드라마를 관통하는 큰 줄거리는 우정이다. 50대, 40대, 30대로 각자 나이가 다른 여성들이 일하면서, 글을 쓰면서 일과 글을 공유함으로써 쌓아가는 우정 말이다. 내 생각엔 정말 재밌는 드라마가 될 것 같은데, 내게 공감하는 드라마 제작자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B가 떠나면 우리 사무실 글터디 초창기 멤버 중에는 나만 남는다. 하지만 우리 사무실 글터디는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누군가 떠나면 또 새로운 멤버가 글터디에 들어온다. 그건 아마도 지난 5년간 직장 동료를 넘어 서로 흉금을 터놓는 친구가 되는 글터디의 위력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정혜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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