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메디시티 대구' 지금 필요한 것은 기업가정신

  • 권업 객원논설위원
  • |
  • 입력 2023-09-22  |  수정 2023-09-22 06:55  |  발행일 2023-09-22 제26면
대구, 최상위 의료 인프라

市가 역점두고 추진하는

ABB산업과 바이오헬스

기막힌 조합 이룰 전략의 창

지금 필요한 것은 도전정신

[경제와 세상] 메디시티 대구 지금 필요한 것은 기업가정신
권업 객원논설위원

오랜 기간 한국 산업의 기술력 강화에 노력해온 많은 전문가들은 우수한 자연계 인재들이 의과대학 한군데로 몰려가는 요즘 세태를 매우 우려하고 있다. 이정동 서울대 교수 같은 기술 정책가들은 '말기적 증상'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지난 4년간 전 세계를 몰아친 팬데믹과 미·중 기술패권 전쟁 속에서 제조업 기반이 강한 국가일수록 위기 이후 경제회복의 속도가 빨랐다. 한국도 비교적 선방했지만 현재 혁신역량의 정체와 투자 성향의 보수화, 이어지는 제조업 기반의 균열로 미래성장 잠재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지금 우리가 가진 제조업 경쟁력은 1970년대 우수한 인재들이 전자, 화공, 기계 공학을 배우고 산업 현장에서 분투노력을 한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라이선스 직업만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지금의 직업선택 구조는 한국 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장기 저성장의 시련을 겪은 일본을 닮아가는 'Japanification(일본화)'을 우려하는 기업인과 학자들이 지난 18일 '산업 대전환'을 선언하고, 디지털 헬스케어, 유전자 치료제 등 첨단 신산업 육성과 신산업 인력 부족 해소를 위해 '우수 인재 레드카펫' 등 정부의 선제적인 제도 개선과 규제 혁파를 주문했다. 아주 시의적절하고 곪은 환부를 정확히 찌르는 처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축적된 우수한 의료 인력을 단순한 임상 의사에서 신산업 선도자로 탈바꿈시키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우리나라는 IT와 바이오, 의료 분야에서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정작 의학과 공학의 연결 고리가 약해 반도체보다 3배 이상 큰 바이오 시장을 놓치고 있다는 반성이 나온다. 국내 바이오헬스 산업은 1조7천600억달러 규모의 세계 시장에서 몇 년째 점유율 2%의 덫에 갇혀 있다. 거기다 세계 의료기기 시장에서 우리 시장점유율이 단 2%(2003~2021)에 불과한 것은 제품 기획부터 인허가, 특히 임상시험 단계의 애로가 원인으로 꼽힌다. 우리나라가 남부럽지 않은 의료 인프라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의료기기 기업은 10% 수준에 그친다. 이에 대해 의사 출신 벤처기업인들은 우리 사회에는 의사-기업가 생태계가 형성돼 있지 않다는 점을 주원인으로 지적한다. 의사가 연구 성과를 내면 환자 진료를 하는 것보다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최근 바이오헬스 산업이 차세대 국가 주력 산업으로 성장엔진이 가동되면서 창업에 나서는 의사들이 늘어나는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고려대와 연세대 의료원은 의사들의 도전 DNA를 끌어내고 임상 의사들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정보와 인적 네트워크를 보완하기 위해 '의사창업연구회'를 조직하여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주>웰트는 복부 비만, 당뇨 등 만성질환자의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스마트벨트'를 개발하여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선물하고 이후 명품 브랜드인 S.T.듀폰과 협업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의사를 상대로 하는 진료 상담 앱을 개발한 <주>아이쿱은 GC녹십자와 손잡고 최근 총 133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대구는 종합병원 17개, 일반병원 90개, 의원 1천877개, 치과병·의원 919개라는 인구 대비 전국 최상위 의료 인프라를 갖춘 그야말로 '메디시티 대구'다. 지금 대구시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ABB산업(AI·빅데이터·블록체인)과 기가 막힌 조합을 이룰 수 있는 바이오헬스 분야는 이제 '전략의 창'이 열린 셈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도전정신, 나아가 기업가정신이다.
권업 객원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