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요! 포항 전통시장 감성여행 .6 <끝>] 청하공진시장

  • 류혜숙 작가,박관영
  • |
  • 입력 2023-10-12 08:05  |  수정 2023-10-12 08:07  |  발행일 2023-10-12 제18면
드라마 끝나도 관광객 발길 여전…백년 역사 전통장터 자부심 가득
20230826 포항 청하공진시장1
포항시 북구 청하면에 위치한 청하공진시장 전경. TV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로 유명세를 타면서 시장 이름도 바뀌었고, 찾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2023101101000285600012182
드라마 속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던 보라슈퍼.


포항 북구 동해대로 청하삼거리에서 청하로 빠져나간다. 첫 번째 버스정류장 이름은 '청하면 미남리', 땅의 이름이 그대로 정류장의 이름이다. 목이 좁은 길을 조금 달리자 양쪽으로 들이 넉넉히 펼쳐진다. 서정리 천을 가로지르는 청하교에서 교각만 남은 옛 다리를 본다. 무성히 자라난 갯풀들이 가을가을 몸을 흔든다. 마을이 가까워짐을 알리는 크고 작은 집들을 쓱 쓱 스치고, '청하파출소' 버스정류장과 진짜 청하파출소를 지나며 이제 읍내에 들어왔음을 자신한다. 커다란 정안씽크 공장의 외벽에서 낯익은 그림을 만난다. 빨간 등대, 바닷가의 집들, 언덕 위의 배, 청진3리 회관 2층의 윤치과, 한낮의 커피 달밤의 맥주 카페, 그리고 달빛 흐르는 바닷가에 앉아 있는 남녀의 뒷모습. 그들에게 하나하나 눈길을 주는 사이 옷장수 트럭을 지난다. 생활 잡화를 파는 난전이 새마을 금고의 그림자 속에서 나타나고 그 너머로 오색의 우산들로 뒤덮인 나지막한 광장이 열린다. 청하시장, 아니, 청하공진시장이다.

고스란히 남아있는 '갯마을 차차차' 배경
카메라 들고 시장 누비는 사람들로 북적
백년 전엔 애국지사 만세운동 펼쳤던 곳
상인들 대를 이어 시장 지키며 명맥 유지
옛 정취 물씬·규모 작지만 볼거리 많은 곳


◆ 청하공진시장

2021년 여름 TVN에서 방영된 '갯마을 차차차'는 안방극장을 넘어 세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드라마다. 2004년 개봉한 영화 '홍반장'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현실주의 치과 의사 윤혜진(신민아 분)과 만능 백수 홍두식(홍반장, 김선호 분)의 밀고 당기는 사랑 이야기를 재미있게 그렸다. 로맨스와 코미디에 풋풋한 갯마을 냄새까지 더해졌던 드라마는 다양한 연령층의 인기를 얻으며 초반부터 '저기가 어디야?'라는 폭발적인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곳이 여기다. '갯마을 차차차'의 주요 공간인 '공진시장'은 바로 이곳 '청하시장'이다. 입구의 탑 간판에 적힌 이름은 '청하공진시장'이다. 오래된 청하와 새로운 공진이 하나가 됐다.

청하공진시장은 1일과 6일에 장이 열리는 5일장이다. 메인 시장은 두 개의 단층 상가에 두 개의 아케이드가 연접된 형태로 작은 규모다. 그 주변으로 광장이 넓고 거리를 따라 가겟집들이 늘어서 있다. 청하공진시장은 현재 90여 개의 점포가 운영 중이라 한다. 공영 주차장은 지난 8월에 완공됐다. 주차 면수는 195면이다. 평일에는 휑해 보이지만 장날이면 많은 사람이 몰려온다. 과일, 생선, 건어물, 채소, 잡곡, 의류, 신발, 잡화, 닭, 오리, 개 등의 가축, 모종 등 각종 품목의 난전이 펼쳐지고 빨갛고 하얗고 파란 천막들, 까만 그늘막과 색동 우산들이 장터를 둘러싼 광장과 거리를 가득 메운다. 시장 상가는 몇몇 모서리 점포만 영업을 할 뿐 나머지는 거의 비워진 모습이지만 꽤나 너른 아케이드 공간은 각종 부스와 난전으로 채워진다. 호떡집 앞에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길다. 어묵과 순대, 호박전 등을 파는 포장 부스도 인기다.

새마을부녀회에서 운영하는 부스에는 청하의 특산물이 진열돼 있다. 그중에서도 경북 1호 벼 품종인 '다솜쌀'은 청하면의 효자 상품이다. 처음에는 부녀회 기금을 만들기 위해 시작했지만 지금은 자부심과 즐거움이 더 크다고 한다. 점심 무렵이면 잔뜩 펼쳐져 있던 난전들이 하나둘 정리를 시작한다. 청하공진시장은 아침 일찍 개장해 점심 무렵 파하는 전형적인 시골 5일장이다.

2023101101000285600012182
드라마 속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던 보라슈퍼.

◆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공진시장의 풍경들

그러나 카메라를 들고 시장을 누비는 이들은 언제나 눈에 띈다. 전국에서 또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다. 청하공진시장에는 드라마 속 공진시장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은 '보라슈퍼'다. 드라마 속에서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던 보라슈퍼는 마치 먼 옛날부터 이곳에 이렇게 자리한 모습이다. 우체통, 아이스박스, 튜브, 또또명당 제 818회 또또복권 1등 14억 당첨 홍보물 등 모두가 드라마 그대로다. 그러나 이제 보라 엄마 없는 슈퍼는 추억의 장난감과 아폴로, 쫀드기, 휘파람 소리 나는 사탕 등의 옛날과자를 판매하고 달고나 체험을 할 수 있는 가게로 바뀌었다.

바로 옆은 '공진반점'이다. 여전히 공진반점 간판을 달고 있는 가게는 지금 곰탕, 소머리 국밥, 콩나물 국밥 등을 파는 이가식당이다. 반점 뒤편으로 보라 아빠가 운영했던 '청호철물'이 보인다. 건물과 간판만 그대로 남아 있고 내부는 낚시, 잡화, 부품을 판매하는 가게로 바뀌었다. 문 앞에 작은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추억 사진 한 장을 담을 수 있는 예쁜 소품이다. 청하공진시장 아케이드 옆에 '오징어 탑'이 있다. 윤혜진이 동네 꼬마들과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곳이다. 아케이드 입구에는 전직 가수 오윤이 운영하는 '한낮에 커피 달밤에 맥주' 카페 파사드가 서 있다. 파스텔 톤의 커다란 문과 푸른 덩굴이 내려앉은 카페의 모습은 가장 인기 있는 배경이다. 카페 안쪽 아케이드 공간은 드라마와 방문객들을 위한 기념 쉼터다. 주인공들의 모습과 방문객들이 남긴 메시지가 빼곡하다. 카페 정면 광장 너머로 '청하남선알미늄' 간판을 내건 건물이 보인다. 사실 저 건물이 애초 오윤의 카페로 쓰인 곳이다. 원래 새시 공장이었고 건물은 드라마가 끝난 뒤 원래의 모습과 쓰임으로 복귀했다. 처음 저 장소를 발견했을 때 마치 준비가 된 자연스러운 세트장 같은 분위기에 촬영진도 놀랐다고 한다. 카페 앞에서 주위를 휘 돌아보면 공진 문구완구, 공진 쌀 잡곡, 청호우유 간판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온다. 청하시장의 25곳 상가가 드라마 배경이 되었고 대다수 상인들은 길손으로 출연했다고 한다.

2023101101000285600012184
공진반점 간판을 달고 있는 가게는 곰탕과 국밥 등을 판다.

◆ 백년 역사의 5일장

청하면의 이름은 청하현에서 왔다. 옛 기록에 따르면 청하현은 고려 때부터 있었고 경주에 예속되어 있다가 조선 태조 때 감무를 두어 독자적인 고을이 되었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청하현의 현내면, 서면, 동면, 남면을 합해 영일군 청하면이라 하였는데 청하현의 소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유래 깊은 일대의 중심이라는 의미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 3월의 만세 운동이 전국 각지로 번질 때, 11일과 12일 이틀간 청하장터에서 애국지사 23인을 선봉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고 전해진다. 일본 경찰이 몰려와 총검으로 위협했으나 장날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만세운동에 동참, 5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의 함성이 청하장터에 울려 퍼져 그칠 줄 몰랐다고 한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의하면 청하의 만세시위는 2회, 참가 인원은 500명, 부상자 수 50명, 피검자 수는 40명이었다고 한다.

2023101101000285600012183
오징어탑

몇몇 자료에는 청하시장이 1920년대 중반 이후 정기시장으로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그보다 더 이전이라 여겨진다. 분명한 것은 꽤 큰 시장이었다는 점이다. 시간이 흘러 포항 시내에 시장이 들어서고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청하시장은 많이 축소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일생을 시장과 함께해 온 주민들이 있고 대를 이어 시장을 지켜온 토박이 상인들도 있고 수십 년간 장날이면 찾아온 장꾼들도 있다. 이름난 맛집인 '시장식육식당'은 대를 이어 식당을 운영하고 있고, 계란과 생닭을 판매해 온 장꾼은 청하장터를 드나든 지 30년이라 한다. 씨 마늘과 모종, 생강 등을 판매해온 상인은 30년이 훌쩍 넘었다는데 손님들은 그녀를 '농사 선생님'이라 한다. 이제 막 귀농했거나 농사 초보인 손님들은 그녀에게 모종 심기부터 작물 수확까지 모든 과정을 배운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먼 곳의 소식을 듣고 이웃을 만나고 또 배우는 곳이 청하 장터다. 이렇게 100년이 흘러왔다.

'청하가는 길'이라는 노래가 있다. 재일교포 2세인 '아라이 에이치'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고향인 포항 청하면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45분여의 서사로 풀어낸 곡이다. '이제사 왔냐고 내 고향이 두 손 벌려서 기뻐하며/ 반가이 맞아주는 기분이 나는/ 사랑스런 대지에 바람이 불어/ 혼자서 걸어가는 청하의 길/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나는 간다.' 그의 한국 이름은 박영일이다. 그는 또 이렇게 노래한다. '마을을 나서니 나의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푸르른 바다/ 저 바다 이름은 영일만이래/ 나의 이름도 영일이라 같은 이름이란 걸 처음 알았네.' 1995년에 발매된 이 앨범은 그해 일본 최고의 앨범으로 선정됐다. 이 노래는 하나의 청하아리랑이다. 시장 곳곳에 혜진과 홍반장의 얼굴이 가득하다. 서로 정반대의 성격과 현실 속에서 부조화와 조화를 공감했던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카메라를 치켜든 청년들이 장터를 누빈다. 그들 곁으로 100년의 시간이 흘러간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포항시

기자 이미지

류혜숙 작가 기자

기사 전체보기
기자 이미지

박관영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