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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영 논설위원 |
백약이 무효일 지경이다. 지자체마다 앞다퉈 출산 지원사업을 펴고 있고, 특히 인구절벽을 마주한 지역일수록 파격적인 출산장려금 정책에 매달린다. 지난해 전국 지자체의 관련예산이 1조원을 넘었으니 다급함과 절실함은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경쟁적으로 지원금 규모를 늘리고 있으나 반짝효과만 나타날 뿐, 지속성은 전혀 담보되지 않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돌고 돌아 결국은 양질의 일자리 문제로 귀결되고, 학교나 병원 등 인프라가 전제돼야 해법의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무직자, 즉 니트(NEET)족이 8만명을 넘어선다는 최근의 통계청 조사결과가 암울하고 답답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청년층은 상대적으로 미디어 영향을 많이 받는다. 대부분은 휴대폰을 끼고 살다시피 하기에 특정 TV프로그램은 물론, 유튜브나 틱톡, '짤'에 익숙하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특성이 강한 만큼 전파력이나 확장성 또한 크다. '나만의 해석'이 횡행하면서 생뚱맞은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혼자 사는 유명인들의 일상을 관찰카메라 형식으로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8%대의 시청률을 보일 정도로 인기가 꾸준하다. 출연자 대부분이 또래 평균을 훨씬 웃도는 경제력을 갖추고 취미생활이나 여가활동을 즐기는 과정 등이 담겨있다. 이를 보는 젊은 층 상당수는 일단 부러워하면서도 자신의 처지를 대입, 자조적인 해석을 한다. '혼자 멋지고 폼 나게 사니 너무 좋겠다' '결혼하면 저렇게 자유롭게 살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식으로 입력한다. 싱글라이프의 애환보다는 자유와 능력이 훨씬 더 돋보이는 바람에 결혼에 대한 인식이나 고민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어 보인다.
'금쪽이'라는 호칭을 익숙하게 만든 방송 프로그램도 출산과 육아를 기피하려는 이들의 방어도구로 자주 소환된다. 주로 별나거나 독특한 성격 또는 습관 등과 관련된 문제를 다룬다. 부모들의 고민내용을 바탕으로 베테랑 육아 전문가들이 솔루션을 제공하고 육아법을 코치하는 형식이다. 프로그램상으로는 기-승-전-결이 존재하나, 의도를 가진 도구로 쓰일 때는 달라진다. 대개 해피엔딩에 가까운 결과와 상관없이 감당하기 힘든 실상과 지난한 과정만 들춰낸다. 그리고는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느닷없는 결론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물론, 여기엔 심리적·경제적 부담감 외에 행복에 대한 복잡한 심경 등 현실적인 부분이 많이 이입돼 있다.
언젠가부터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오래전에는 으레 해야 한다는 관념이 지배적이었다면 이젠 많이 달라졌다. 하고 싶은데 할 수 없거나, 할 수 있는데 하기 싫은 부류가 있다. 선택의 문제가 됐고 그 선택을 강요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가정을 꾸리고 육아를 하는 문제는 불행하게도 다양한 미디어 등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축적된 눈높이와 현실에 발목이 잡힌 지 오래다. 세계 최저 수준인 한국 출산율(0.7명)이 유지될 경우 2040년이면 국내 유소년(0~14세) 인구는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섬뜩하다. 아무리 절박해도 결혼을 하라고, 아이를 낳으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 다만, 국가 명운이 걸린 문제이기에 땜질식 처방보다는 표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균형발전을 통한 인프라 구축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가장 시급하다.
장준영 논설위원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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