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그들만의 릴레이

  • 변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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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08 06:58  |  수정 2024-03-27 11:40  |  발행일 2023-11-08 제26면
올들어 '관' 발주 캠페인 많아
주제 중요성 모르는 바 아니나
참여자 대부분 기관단체장에
여러 캠페인 겹치기 출연까지
그들만의 이벤트에 관심 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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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현 편집국 부국장

'육상 경기의 꽃'이라 하면 흔히 100m 달리기나 마라톤을 떠올리지만, 하나는 싱겁고 다른 하나는 지루하다. 그에 비하면 릴레이(이어달리기)는 확실히 짜릿한 묘미가 있다. 특히 바통을 이어받은 마지막 주자가 결승선을 앞두고 선두를 따라잡는 장면은 이 종목의 백미라 하겠다. 마라톤보다 더 훌륭한 종목이라 할 순 없겠지만 육상경기의 특장점과 흥행성을 잘 살린 건 분명해 보인다. 릴레이를 인문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목표지점을 향해 여럿이 힘(구간)을 분담하는 협동성과 개인별 능력(스피드)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개별성이 절묘하게 결합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성공한 조직'의 특성 중 하나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조직(선수단)을 잘 꾸리면 전세를 뒤엎는 반전(역전)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흔히 캠페인이라 부르는 사회운동도 질적 변화를 겪고 있다. 탁월한 1인 혹은 특정 단체가 주도하는 데서 벗어나 다수의 시민이 동참하는 릴레이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나를 따르라'식의 수직적 캠페인이 아니라 '다 함께'라는 수평적 캠페인이다. 2012년 루게릭병(근육 위축 질환) 환자를 돕기 위해 미국에서 시작된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릴레이 캠페인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캠페인 참여자들이 왜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퍼포먼스를 하는지 처음에는 알지 못했고, 그저 단순한 '쇼'라고만 생각했다. 훗날 이는 근육이 수축되는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함으로써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려는 행위임이 알려졌다. 유명인뿐 아니라 일반인의 참여가 늘어나고,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SNS에 관련 동영상이나 사진을 올리고 다음 주자(참여자)를 지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릴레이 캠페인은 최근 국내에서 다양한 주제로 변주되고 있다. 올들어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한 것은 마약범죄 예방 캠페인인 'NO EXIT'다. 일상 속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운동인 '1회용품 ZERO 챌린지'는 '바이 바이 플라스틱(Bye Bye Plastic·플라스틱 사용 줄이기)'이라는 아류를 만들어냈다. 이외 '우리 농수축산물로 추석 선물하기' '수산물 소비 및 어촌휴가 장려' '쿨코리아 챌린지' '농번기 음주운전 예방' '산불 예방' '착한가격업소 이용' '전국동시조합장선거 참여 독려 위한 공명선거' '청렴 덕분에 챌린지' '주소갖기' 등 별별 릴레이가 다 등장했다. 좋게 보면 '릴레이 캠페인 전성시대'이고, 삐딱하게 보면 '릴플레이션(릴레이캠페인 + 인플레이션)'이라 하겠다.

캠페인이 난무하자 자연히 주목도가 떨어졌다. 사람들은 사실 이렇게 많은 릴레이 캠페인이 전개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관(官)' 냄새도 진동했다. 캠페인 명칭에서 유추할 수 있듯 정부나 지자체, 정치권 등에서 발주한 '위로부터의 캠페인'이 많은 탓이다. 일반인의 공감과 동참을 이끌어 내지 못하는 이유는 언론에 소개되는 참여자들의 면면만 봐도 안다. CEO, 은행장, 대학 총장, 기관단체장,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대부분이며, 이들은 또 여러 캠페인에 겹치기 출연까지 하고 있다. '그들만의 캠페인'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친구의 고통을 알리기 위해 시작된 아이스 버킷과는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캠페인은 공감에서 시작돼야 진정성을 갖는다.

총선이 다가오니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대구경북 대학생들이 펼친 '우리가 말하는 청년정책' 캠페인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1인 릴레이 피케팅 형식으로 진행된 이 캠페인에서 학생들은 '청년은 선거의 포장지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냈다. 선심성 청년공약보다는 청년이 원하는 진정한 공약을 대선 후보들이 내세우길 바라는 취지여서 많은 지지를 얻었다. 얼마 전 정치권에서 '표(票)퓰리즘' 성격이 강한 '메가 서울' 구상이 터져 나와 지방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번 총선에선 출마자들에게 '지방시대를 위한 실천 행동' 릴레이 캠페인을 요구해 보는 건 어떨까. 그들이 지방의 고통에 얼마나 진정성 있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변종현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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