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위정자의 덕목

  • 마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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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23 06:50  |  수정 2023-11-23 07:01  |  발행일 2023-11-23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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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창훈기자〈경북부〉

정치를 행하는 사람을 일컬어 위정자(爲政者)라고 한다. 우리 사회의 최상위 지도층을 의미하는 정치인(政治人)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속내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보편적으로 개인과 정당 그리고 국가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데는 절대다수가 공감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위정자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물론 형식적 측면에서 의회를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제도가 발달하기 이전과 비교한다면, 큰 차이가 있다.

절대군주제 아래에서 위정자는 세습 군주 일인의 통치를 보좌하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한 임명직이었다면, 근대 이후에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의회의 의원(기초·광역·국회의원)이나 행정부 수반(기초·광역단체장, 대통령) 등을 지칭한다. 이처럼 현재의 가치와 기준에서 본다면 정치인이란 정당 정치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로, 의회를 비롯한 행정부와 국제기구 등 다양한 위치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원화, 양극화 등 이해관계가 복잡다단하게 얽히고설킨 사회구조 속에서 의사 결정을 신속하게 이끌어 내기 위한 수단이 필요해서일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정자의 역할은 서민의 의·식·주 해결이 가장 기본적인 책무로 인식되고 있다. 이를 현재에 투영해 재해석하면, 직업을 정치로 하는 위정자는 국민이 행복하고 안전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를 조성할 책임과 의무를 지는 셈이다. 소모적인 논쟁과 갈등을 줄이고, 신속한 의사 결정을 통한 사회통합의 필요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특히 우리나라는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절대 빈곤이 어느 정도 해소됐으며, 현재는 사회적 약자 등 소외계층과 함께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고민되고 반영되는 단계에 있다. 단순히 먹고사는 것에 집중하면서 위정자의 눈치를 살피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가 위정자들에게 요구하는 가장 큰 덕목은 간명하다. 자신에게 공천을 준 정치 세력이나 집단이 아니라, 자신을 선택해 준 유권자들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각종 매체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는 국정감사를 보면, 과연 이들이 국민의 눈을 의식하고 있는지 참담할 지경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가 도입된 이래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례를 남긴 유일무이한 국가다.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도 헌법 절차를 통해 하야시킨 일등 국민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마창훈기자〈경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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