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페로니즘의 終焉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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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23  |  수정 2023-11-23 07:00  |  발행일 2023-11-23 제22면
아르헨 대선서 밀레이 당선

좌파 정부의 경제실패 심판

여당 김포·서울 통합법 발의

정책 급발진 총선용 의구심

보수 정체성 질서·점진주의

[박규완 칼럼] 페로니즘의 終焉
논설위원

#1 뮤지컬 '에비타'는 1978년 런던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에비타. 제29대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안 페론의 부인 에바 페론의 애칭이다. 그녀의 삶은 짧았지만 강렬했다. 통째 스토리텔링이자 한 편의 영화다. 시골 농장주와 정부(情婦)의 사생아, 15세 가출, 삼류 배우, 페론 대령과의 운명적 만남, 남편의 대통령 당선, 영부인 전성시대, 33세로 요절…. 1946~1955년 아르헨티나의 정치와 경제, 역사는 페론 부부에 의해 조각됐다.

후안 페론은 재임 중 기간산업의 국유화, 외국자본 축출, 노동자 처우 개선 등 사회주의적 대중영합 정책을 펼쳤다. 이른바 페로니즘이다. 그러나 페로니즘은 포퓰리즘과 동의어였다. 무리한 선심성 정책은 국고를 탕진했고 인플레이션과 실업난을 야기했다. 결국 후안 페론은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다. 뮤지컬 '에비타'에서 여주인공이 부르는 'Don't cry for me Argentina'는 에바 페론의 추억을 소환한다. 하지만 페로니즘은 아르헨티나 추락의 단초였다. 세계 5위 경제대국은 그렇게 무너졌다.

#2 2023년의 아르헨티나. 대선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지난 8월 대선 예비선거에서 밀레이 하원의원이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극단적 자유시장경제주의자 밀레이는 18개 정부부처 중 10개를 폐쇄하고 미국 달러를 법정통화로 채택하겠다는 파격적 공약을 내걸었다.

10월 대선에선 뒤집혔다. 현 좌파 정부의 경제장관 마사 후보가 37%를 득표해 1위로 올라섰다. 마사는 집권 프리미엄을 최대치로 살렸다. 근로소득세를 깎아주고 부가세 일부를 환급해줬다. 연금 생활자에겐 보너스를 뿌렸다. 연 140%의 물가상승률, IMF(국제통화기금)에 430억달러 빚을 지고 있는 나라에서 벌어진 막장 돈 살포였다. 하지만 지난 20일 결선 투표에서 유권자들은 밀레이 후보를 최종 선택했다. 경제난과 살인적 인플레에 민심이 돌아섰다. 언론의 표현대로 '페로니즘의 종언'이다.

#3 여당이 기어이 '김포·서울 통합특별법'을 발의했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2025년 1월1일부로 서울시 김포구가 된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 민주당이 반대하고 있어서다. 물론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얻는다는 가정법이라면 급물살을 탈 수 있다. 한데 '국힘 150석'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의원 입법을 우회하더라도 경기도의회와 서울시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유정복 인천시장이 "총선용 정치 쇼"라고 비난한 이유다.

'메가 서울' 구상은 국토균형발전, 지방소멸, 저출생 같은 시대적 과제와 함께 논의해야 하며 사회적 공론이 필요하다. 총선 목전에 불쑥 던질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다. 공매도 전면 금지, 주식 양도세 완화, 일회용품 사용 무기한 연장도 지나치게 즉흥적이다. 표심(票心)에 영합했다는 의구심을 살 만하다.

숙의 없는 정부 정책의 급발진은 위험하다. 그 데미지는 오롯이 국민에게 전가된다. 우리 보수정권의 정책 급조(急造)를 아르헨티나의 페로니즘에 비길 수는 없다. '양과 질'이 다 다르다. 하지만 닮은 구석이 있긴 하다. '대중영합' 테제와 '선거용'이란 지향점이 그렇다. 근대 보수주의 창시자로 불리는 영국 정치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의 정체성을 '전통주의, 질서주의, 점진주의'로 규정했다. 개혁과 변화를 주의 깊고 신중하게 추진하는 것이 보수의 장점이라고도 했다. 정부여당의 정책 급변침은 전혀 보수정권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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