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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광복 이후부터 이른바 '촛불혁명' 시기까지 한국 진보정치의 궤적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사진은 촛불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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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상 지음/나무와숲/294쪽/1만7천원 |
진보정치의 위기는 언제부터였을까. 진보정치의 위기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진보적 가치와 정체성의 혼란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요즘, 위기의 진보정치를 진단하고 진보의 재구성을 주장하는 책이 나왔다. 진보진영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현재의 한국 정치를 바꾸지 않는다면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을 담은 윤영상의 책 '다시 진보의 길을 묻다'가 그것이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거쳐 민중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정의당 등 진보정당 활동을 줄곧 해온 저자가 진보정치의 위기와 재구성에 관한 오랜 시간의 고민을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부터 싹텄다며 "그런 생각이 발전하는 데는 고 노회찬 의원과 치열한 토론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이자 '창작과 비평' 편집주간은 "'다시 진보의 길을 묻다'는 진보에 대한 자족적 사유에 머무르지 않고 이 고통을 감당한 성과"라면서 "저자는 노회찬 의원을 이러한 노력의 선구자로 보았고, 그 맥락에서 노회찬 의원을 자주 소환했는데, 윤영상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상황에 기초해 진보의 의미와 실천 방향을 재구성했다"고 말한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도 "역사가 목적을 상실한 시대에 진보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물으며 "진보의 재구성 없이 진보는 없다"면서 "여러 얼굴의 '진보' 안팎에서 끊임없이 혁신을 시도하며 살아온 저자가 자신의 궤적 또한 되돌아보며, 자신의 얼굴이기도 한 '진보'의 과거와 현재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고자 하는 애정 어린 시도"라고 말한다.
이 책은 모두 7단원으로 구성돼 있다. 진보와 보수의 개념과 역사적 맥락을 다룬 '진보와 보수', 광복 직후부터 이른바 '촛불혁명'이 일어난 최근까지 한국 진보정치의 궤적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한국 진보정치의 역사와 현실', 지난 대선을 심층분석한 '다시 보는 2022년 대선 결과', 최근 민주당과 정의당의 위기를 집중 조명한 '진보정치의 위기와 혁신 논란', 4차 산업혁명과 기후위기, 재난, 전쟁 등 지구적 위기와 시대적 과제를 다룬 '시대적 과제와 진보정치', 마지막으로 진보정치의 나아갈 길을 모색한 '진보정치의 혁신과 재구성'이다.
저자는 먼저 "현재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이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 그것이 정말 정치발전의 표식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합리적 토론보다 흑색선전과 가짜뉴스, 군중심리와 포퓰리즘의 극한대결을 뜻하는 용어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서로 적대하고 혐오하는 극단적 정치문화 속에서 진보정치와 보수정치 간의 합리적 경쟁이란 불가능하다. 그들이 합리적 경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드는 사회적 환경과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
또한 낡고 잘못된 구조를 바꿔야 할 진보가 기존 질서의 일부가 되어 '진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며, 기득권을 내려놓고 시대 상황에 맞는 진보적 가치를 정립하고 실천할 것을 촉구한다. 특히 디지털 전환, 기후위기, 전쟁과 평화는 진보가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시대적 과제로, 그런 시대적 과제를 거부한다면 그들은 '진보'의 이름으로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보수'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저자 윤영상은 1964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 광주 대동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1985년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으로 투옥·제적됐으며, 석방 후 인천·경기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현재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연구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평화네트워크 운영위원, 포럼 평화공감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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