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예측 불가능한 재난…인류는 '희망'이란 이름으로 극복했다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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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12 07:45  |  수정 2024-01-12 17:50  |  발행일 2024-01-12 제12면
■ 책에 남은 재난의 기록들이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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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발행된 벽신문. 〈출처:책 '6일간의 벽신문'〉
지진학자인 루시 존스가 쓴 '재난의 세계사'(눌와)는 과거의 여러 재난을 사례별로 분석하면서 인간사를 함께 다루고 있는 책이다. 책에는 기원후 79년 로마제국의 베수비오산 분화, 1755년 포르투갈 리스본 지진, 2004년 인도양 남아시아 지진, 2005년 미국 허리케인 카트리나 등 역사 속의 많은 재난이 등장한다. 앞으로도 자연재해든, 전염병이든 재난이 언제 어느 곳에서 또다시 인류를 찾아올지 알 수 없다. 또 과학기술의 발달에도 재난을 완전히 통제하기는 힘들다. 재난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이에 최선의 대비를 하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인간에게 있다고 재난의 세계사는 말한다. 일본과 한국도 최근 서로 다른 형태의 큰 재난을 겪은 일이 있다. 책에 남은 그때의 기록들은 갑자기 닥친 재난 앞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2011년 대지진 겪은 일본·2020년 팬데믹 겪은 대구
각자의 방식으로 수습·극복한 과정 기록으로 남겨
아수라장 절망 속에도 서로 위로하며 희망 찾는 모습
재난상황서 인간에 진짜 중요한 것 무엇인지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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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를 겪은 대구시민들의 기록을 담은 책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
◆'6일간의 벽신문'으로 본 재난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지진 규모가 9.0에 달하고, 사망·실종자가 1만8천여 명에 이르는 큰 재난이었다. 지진에 이은 대형 쓰나미는 막대한 피해를 야기했다. '6일간의 벽신문'(패러다임북)은 동일본 대지진 당시 미야기현의 한 지역신문사(이시노마키히비 신문사)가 만든 '벽신문'에 대한 이야기를 쓴 책이다.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이시노마키히비 신문사 역시 윤전기가 침수되는 등 큰 피해를 보았다. 전기가 끊기고 정보망이 차단된 상태였다. 대피소로 간신히 몸을 피한 사람들이 한동안 휴대전화 등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신문사는 종이와 펜으로 벽신문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대피소 위치 등의 긴급 정보를 알렸다. 벽신문 발행은 전기가 복구될 때까지 6일간 이어졌다. 그 벽신문 중 일부는 미국 워싱턴 신문박물관인 'NEWSEUM'에 영구 전시돼 있다.

"벽신문 제작에서 주의를 기울인 점은 재해를 입은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정보를 우선하면서도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었다. 가족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대피소가 어디에 있는지 알렸다. 그리고 식료품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전국에서 구호물자가 도착하고 있다는 사실 등을 게재했다. 가능하면 희망을 품게 하는 기사를 실었다. 허위정보 난무로 의심이 깊어진 사람들에게는 '정확한 정보로 행동을' 하자고 당부했다."('6일간의 벽신문' 중에서)

책에는 대지진 당시의 참상, 재난 앞에 선 인간의 고뇌, 재난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들, 재해 지역의 과제 등 중요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집이 떠내려가고, 거리가 침수돼 사라지고, 화재가 잇따르고, 배가 뒤집어지고… 그렇게 지진은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빼앗아갔다. "항상 가던 라면 가게도 편의점도 모두 사라졌다… 땅 바닥에는 만화책, 요리책, 기념사진부터 장난감 피아노까지 흩어져 있어서 거기에 며칠 전까지 '일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가족이 사망하거나 실종돼 생사를 알 수 없는 경우였다. 책에는 쓰나미로 아내와 아이 셋을 한꺼번에 잃은 40대 남성의 안타까운 사연이 등장한다. 남성은 지진 발생 당시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가 있어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가족의 비극 앞에서 절망한다. 실종자와 부상자가 셀 수 없이 발생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이어졌다. 대피소에 모인 살아남은 사람들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으며 괴로워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돼야 한다. 많은 것을 잃은 절망 속에서 사람들은 작은 것을 통해 한줄기 희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지진 발생 직후 곧바로 대피해 목숨을 건진 50대 주부가 힘든 대피 생활을 이어가던 중 며칠 만에 대피소에 전기가 들어오자 안도와 희망의 감정을 느낀다는 대목이 나온다. 녹록지 않은 복구 과정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2020년, 대구가 겪은 절망과 희망

불과 몇 년 전, 대구에도 예상치 못한 재난 상황이 찾아온 일이 있다.

지난 2020년, 대구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가속화되며 도시 전체가 위기에 빠졌던 것. 너무 갑자기 들이닥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미증유의 사태였다. 초반엔 정체를 잘 알 수 없던 감염병 바이러스로 인해 사망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사망자가 잇따르면서 도시는 큰 슬픔에 빠졌다. 시민들은 최대한 침착하게 재난 상황에 대응했지만, 그래도 팬데믹 초기 도시의 모습은 낯설기만 했다. 마스크 한 장을 구하기 위해 긴 줄을 선 모습, 항상 차로 붐비던 도로가 한산한 모습도 익숙지 않은 것이었다.

지금 다시 일상을 되찾았지만, 아직도 많은 대구시민들에겐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다. 그 당시 발간된 '코로나19 대구 시민의 기록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는 대구시민들이 마주한 '팬데믹의 시간'을 담은 책이다. 대구의 중견 출판사인 '학이사'가 펴낸 그 책에는 대구의 식당과 세탁소 사장, 소설가, 어린이집 원장, 회사원, 학생 등 그야말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온 몸으로 겪고 느낀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일상이 기록돼 있다.

"순식간에 대구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토착민이 보기에도 도시는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암울함만 가득했다. 그러나 대구 사람들은 그냥 당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가격리를 하기 시작했고,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뒤따랐다…"('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 중에서)

책 속의 시민들은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변해버린 일상에 당황하기도 한다. 대구의 한 학교 사서는 글에서 "코로나19를 알리는 뉴스를 접하면서 개학이 미뤄지고 학생들의 등교가 중지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썼다.

"빨리 모두 건강하게 예전처럼 이웃이 함께 모여 웃으며 식사를 하고, 퇴근 후에 술도 한잔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라는 대구 한 식당 사장의 글처럼, 시민들은 코로나19로 인해 힘든 상황에서도 끝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재난이 우리에게 남긴 것

삶의 형태와 환경이 바뀌면서 우리에게 어떤 모습의 재난이 닥쳐올 지 쉽게 예측하기 어렵게 됐다. "우주의 수수께끼가 서서히 밝혀지면서 우리가 얼마나 섬뜩하고 잔혹한 세계에 내던져졌는지 실감한다"고 한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말이 비로소 실감이 난다. 겐지 작가는 '재난'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예의 통찰력을 보여왔다.

책 '6일간의 벽신문' 앞 부분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재해를 입은 분들과 관계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전국 각지에서 많은 격려와 지원 물자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에는 이런 바람도 담겼다. "다음 세대 사람들에게 그날의 참상을 전달하는 것으로, 조금이라도 시민의 '방재의식'이 향상되고 '재해에 강한 도시 만들기'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또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를 펴낸 출판사는 "이 책은 힘겹게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있는 시민들의 기록으로, 책이 시민의 아픔을 위로하고 함께 새로운 꿈을 꾸는 데 작은 힘이 되길 바란다"라고 당시 발간 이유를 설명했다. 같은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기록이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서로 다른 나라, 서로 다른 유형의 재난을 담은 두 권의 책은 각자의 기록을 통해 재난 상황에서 인간에게 진짜 중요한 것들에 대해 말하는 듯하다. 그것은 재난이 언제, 어느 곳에,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지 알기 어렵다는 것. 이에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우선 수습과 극복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 재난을 마주한 이들이 상처를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따뜻한 공감과 위로·격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난이 인간에게 남긴 '숙제'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재난에서는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우리의 대처 매뉴얼 등이 좀 더 업그레이드 돼야 한다는 숙제 말이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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