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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
역시 '약속 대련'은 감흥이 없고 생동감도 없었다. 녹화 방영한 윤석열 대통령 신년대담 얘기다. 보수·진보 언론 공히 "내용·형식 모두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실이 만든 B급 홍보물 느낌이 물씬했다. 야권의 시선은 더 싸늘했다. "민심 외면한 신파극" "봉창 60분" "지루한 90분짜리 영화"…. 김상일 정치평론가는 "클린스만호 축구 보는 것 같았다"고 절하했다.
"질문은 집요했고 답변은 소상했다"는 대통령실의 자찬은 홍심을 벗어난다. 혹시 반어법? 대통령실과 KBS의 티키타카만 빛났다. '김건희 특검법'같이 답변 곤란한 질문은 쏙 뺐고 디올 백을 조그만 파우치로 윤색했다. 윤 대통령은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게 문제였다"며 눙쳤지만 여론은 사뭇 다르다. 명품 백 논란에 대해 56%는 '수사가 필요한 비리 의혹'이라 응답했고 '몰카 공작에 의한 피해' 쪽에 손을 들어준 국민은 29%에 그쳤다.(YTN 여론조사)
박근혜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 헌정사 최초의 탄핵 대통령이고 리처드 닉슨은 미국 유일의 탄핵 대통령이다. 이들은 묘하게도 '불통 대통령'이다. 기자회견을 기피하고 대면보고보다 서면보고를 선호했다. 참모들과의 치열한 정책 토론이 없었다는 점도 닮은꼴이다. 그런 박 전 대통령도 신년 기자회견은 거르지 않았다. 사전 조율된 질문이었어도 답변에 성의를 보였다. 윤 대통령은 아예 신년 기자회견을 한 예가 없다. 2022년 8월 취임 100일 회견을 한 게 공식 기자회견의 마지막 장면이다. 한때 트레이드마크였던 도어스테핑도 2022년 11월 중단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소통 대통령'으로 꼽힌다. 오바마는 8년 재임 동안 총 158회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연평균 20회다. 그것도 각본 없이 즉문즉답으로 진행했다. 오바마는 야당에도 소통의 문을 열었다. 건강보험개혁법 '오바마 케어'를 관철시키기 위해 공화당 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하고, 타운홀에서 건강보험, 기후변화 전문가들과 열띤 토론도 마다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긴 이유도 '국민과의 소통' 아니었나.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따른 국방부·합동참모본부의 연쇄 이전에 드는 비용이 수천억 원이 넘는다. 합참이 국방부에 제시한 이전비용만 2천393억원이다. 합참은 2026년까지 과천 남태령으로 옮겨간다. 대통령이 작금의 불통 상황을 견지한다면 용산 이전의 당위성과 명분은 고스란히 소멸된다.
당 태종은 즉위 후 간관(諫官)을 늘리고 역할을 강화해 소통 반경을 넓혔다. 반면, 수양제는 간관의 씨를 말려 언로를 막았다. 태종은 '정관의 치'로 웅변되는 태평성대를 열었고 수나라는 2대 왕조로 멸망했다. '소통=유능·현군' '불통=무능·암군'의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분히 상관관계가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민심의 스펙트럼은 다채롭고 변화무쌍하다. 소통하지 않으면 민의를 헤아릴 수 없다. 대통령의 불통은 참모들의 양봉음위(陽奉陰違), 비선실세 발호, 공적 이성 상실, 법과 제도의 무력화를 촉발한다.
오바마는 대통령 퇴임식에서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나를 단련시켰다"고 술회했다. 기자회견에 대비하기 위해 공부하고 정책 소양을 연마했다는 고해성사다. 정부도 기업도 가정도 소통해야 길(吉)하고 형(亨)하다. 통치자라면 국민은 물론 야당과 이념성향이 다른 반대진영과도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시즌2'가 대국민 소통의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
논설위원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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