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에코백과 ESG

  • 임훈
  • |
  • 입력 2024-02-23 07:02  |  수정 2024-02-23 07:03  |  발행일 2024-02-23 제26면
친환경 생활용품 과잉 시대
기관·기업에 부는 ESG 열풍
ESG 실현 아쉬운 부분 많아
모두 불편함에 익숙해져야
[하프타임] 개인의 의식 전환 절실한 때

2024022201000652400026151
임 훈 문화부 차장

최근 입춘을 맞아 집에서 봄맞이 대청소에 나섰다. 겨우내 쌓인 생활용품 정리를 위해 서랍과 벽장 속 온갖 잡동사니들을 꺼내 보니 놀랍게도 에코백만 수십 개가 나왔다. 각종 문화 행사의 판촉물 또는 특정 기업의 상품을 알리는 내용이 적힌 에코백들이었다. 환경 보존을 위해 만들어진 가방인 만큼 에코백의 겉면에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나 예술작품 등이 인쇄되어 있었고 봉재 상태 등 마무리도 꼼꼼했다.

하지만 거실에 쌓인 에코백 무더기를 보면서 "과연 이 에코백들이 제 기능을 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기자의 집에 있던 에코백 중 실제로 사용된 적 있는 것은 한두 개뿐이었고, 나머지 에코백들은 "언젠가는 쓰겠지. 이렇게 이쁜데…" 하며 모아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환경을 위해 만들어진 에코백들을 버리려니 고민이 됐지만 결국 두어 개를 제외한 나머지 에코백들은 종량제 봉투로 직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 에코백들을 정리하며 미묘한 죄책감도 밀려왔다. 폐의류 등을 활용해 만들어진 에코백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에코백 제작만을 위해 만들어진 섬유와 디자인으로 구성됐기 때문이었다. 에코백을 만들기 위해 물과 전기 등의 에너지가 소모됐을 것이고, 완성되기까지 여러 명의 손을 거쳤을 것이어서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결국 '자연 보호'나 '기후 위기 극복'이라는 본래의 기능은 수행하지 못한 채 사용자의 무관심이 더해져 참담한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주방 수납장에서도 비슷한 사태가 벌어졌는데 이번에는 수많은 텀블러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종이컵 사용을 줄이면서 커피 등 따듯한 음료를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텀블러들이지만,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로고가 적힌 몇몇 텀블러를 제외한 나머지 것들에는 먼지만 쌓여있었다. 상당수는 특정 기관과 기업의 홍보물로 만들어진 것들이었는데, 일부는 조금만 움직여도 음료가 샐 정도로 만듦새가 조악한 것도 있었고, 디자인 측면에서도 고루한 것들이 꽤 있었다. 이들 텀블러 역시 제조 과정에서 종이컵의 수십·수백 배가 넘는 에너지와 비용이 들었을 텐데, 제대로 사용되지 못한 채 수납장에 갇혀 버리고 만 것이다.

결국 '친환경'이 '반환경'이 되어버린 이 상황이 현재의 대한민국 그리고 대구의 상황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를 비롯한 각 기관 및 기업들은 'ESG' 경영을 전면에 내세우고 탄소중립 및 기후위기 극복에 동참한다고 홍보하지만, 정작 그 이면을 살펴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하지만 기관 및 기업의 노력만큼 개인의 의식 전환이 더 절실하다는 생각이다. 환경을 위해 그 어떤 정책을 만들어도 이를 수용할 개인의 실천이 없다면 ESG는 헛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기자가 생각하는 최선의 방법은 모두가 '불편함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화석연료 시대의 풍요에 익숙해진 현재의 소비행태와 생활 패턴을 바꾸기가 여간해서는 쉽지 않겠지만, 생활 속 '모자람'과 '불편함'에 익숙해져야 우리 삶의 터전을 후세대에 온전히 전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오늘부터라도 차량 콘솔박스에 에코백을 넣어두고, 집에 있는 허름한 텀블러도 편집국에 가져다 놔야겠다.
임 훈 문화부 차장

기자 이미지

임훈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