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진실과 회복…트라우마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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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15 08:05  |  수정 2024-03-15 08:05  |  발행일 2024-03-15 제17면
트라우마 연구 세계적 거장인 저자
성폭력·아동학대 생존자 증언 바탕
일상회복을 위한 사회적 정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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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회복'은 가정폭력, 성폭력, 아동학대를 당한 이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현장에서 시작됐다. 저자 주디스 루이스 허먼은 미국 하버드대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로서 트라우마 치료 및 연구 분야의 세계적 거장으로 꼽힌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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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루이스 허먼 지음/김정아 옮김/북하우스/312쪽/1만9천원

트라우마 치료와 연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회복이라는 근본적 문제를 조명하는 책이다. 저자 주디스 루이스 허먼(Judith Lewis Herman)은 '생존자가 공동체와 일상으로 복귀하게 될 때 트라우마를 야기했던 환경이 여전하다면 돌아간 공동체에서 생존자는 어떻게 회복을 해나갈 수 있을까'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 나간다.

구체적으로는 철학, 사회과학, 역사, 법, 심리학, 정신의학 등 폭넓은 연구 자료를 토대로 그리고 무엇보다 다양한 생존자들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세워 생존자들의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정의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을 감동적으로 그려나간다.

이 책은 가정폭력, 성폭력, 아동학대를 당한 이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현장에서 시작됐다. 50년 넘는 세월 동안 트라우마를 치료하고 연구해온 허먼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폭력이라는 근원적 불의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생존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트라우마는 궁극적으로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까.

책은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 '권력'에서는 이 책의 바탕이 되는 이론, 즉 정의는 권력이 어떻게 조직되는지에 달려 있다는 이론을 펼친다. 1장 '독재의 규칙'과 2장 '평등의 규칙'에서는 근본적으로 상이한 두 가지 유형의 권력 관계인 지배·종속 기반의 권력 관계와 호혜·상생 기반의 권력 관계를 대조한다. 전자는 독재의 원형이고 후자는 평등의 원형이다. 3장 '가부장제'에서는 폭력의 규칙과 수법들이 사회관계들의 조직 속에 어떻게 뿌리박혔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예로 전 세계적인 가부장제 헤게모니를 탐색한다.

2부 '정의의 비전'에서는 인터뷰에 나서준 생존자들의 증언으로부터 그려낸 정의의 비전들을 상세하게 논의한다. 4장 '인정'에서는 진실에 대한 공개적 인정이 정의의 출발점이어야 함을 말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인터뷰한 모든 생존자는 다른 무엇보다 진실을 인정받고 정당성을 입증받기를 바랐다. 5장 '사죄'에서는 가해자 처벌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생존자의 피해를 복구하고 저질러진 잘못을 시정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정의의 비전을 논한다. 6장 '책임지기'에서는 가해자에게 책임을 지게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비전들을 탐색한다. 이때 저자는 생존자 중심의 정의 운동의 이론과 실천들을 검토하면서 그 가능성과 한계를 검토한다.

3부 '치유'에서는 정의가 피해자를 치유할 뿐 아니라 가해자와 사회 전반을 치유할 수 있다는 논의를 더 발전시킨다. 7장 '배상'에서는 배상 문제를 탐색한다. 허먼은 이 장에서 생존자가 실질적 보상을 창출하려면 어떠한 유형의 공동체 조직이 필요한 것인지를 고려할 수 있도록 프레임을 확장한다. 8장 '재활'과 9장 '예방'에서는 공동체 안전을 해치지 않으면서 가해자를 공동체에 복귀하게 만드는 방안을 찾고 어떻게 피해를 예방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상상한다. 마지막 장인 '결론: 가장 오래 걸리는 혁명'에서 저자는 성폭력 생존자들이 발표한 '생존자 의제'를 제시한다. '생존자 의제'는 공동체의 쇄신, 남성 중심주의를 미화하는 문화의 변혁, 교육에 대한 공동체 투자를 확고히 단행하자고 주장하는 정의에 대한 청사진이다.

저자 주디스 루이스 허먼은 미국 하버드대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로서 트라우마 치료 및 연구 분야의 세계적 거장으로 꼽힌다. 하버드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보스턴대 의료센터에서 일반 및 공동체 정신의학 수련을 받았다. 이후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헬스 얼라이언스에서 '폭력 피해자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설립해 30년 넘게 책임자로 일했다. 1996년 국제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주관 평생 공로상, 2000년 미국여성의사협회 주관 여성 과학자상을 수상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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