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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어머니가 뇌전증을 앓고 있는 아이를 쓰다듬고 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
대구경북에는 여전히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환아 가정이 많다. 특히, 희귀난치성 질환의 경우엔 치료비 외에도 부가적으로 필요한 간병·소모품·보장구·심리지원 등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지만 국가나 지역사회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영남일보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대구지역본부와 함께 어려움에 처한 환아의 안정적인 치료 환경 마련과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어린이에게 희망을'이란 주제로 환아 지원 캠페인을 펼친다. 매월 1회 영남일보 지면을 통해 희귀난치성 질환 등으로 치료비 및 기타 비용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 환아 가정을 소개함으로써 의료 사각지대 해소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
호흡기 의지 가냘픈 10세 여아
전세계 50여명 '특발성 뇌전증'
가족 사랑·의지로 10년 버텨내
한달간 입원비만 300만원 훌쩍
키 100㎝, 몸무게 13㎏ 남짓한 10살짜리 여자아이가 침대 위에서 온 힘을 다해 몸을 뻗친다. 뻗힌 몸은 이내 머리가 종아리에 닿을 듯이 뒤로 젖혀져 마치 C자를 그린다. 아이는 힘겨운 듯 "으~" 하는 소리를 낸다.
하루에도 몇 번씩 경직 때문에 자세가 틀어지면 코에 낀 산소호흡기가 빠져 '삐~' 소리가 난다. 집에서 지아(가명)를 홀로 돌보는 엄마는 이 소리를 듣자마자 지아에게로 뛰어간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지아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삐뚤어진 호흡기를 바로잡아 주고 온몸을 주무르며 경직된 몸을 풀어주는 정도가 전부다.
◆세계적으로 드문 희귀난치성 질환 앓아
2014년생인 지아는 난치성 뇌전증을 동반한 특발성 뇌전증을 앓고 있다. 지아가 가진 병은 전 세계에서도 50여 명밖에 없는 희귀 난치성 질환이다. 이 병을 앓는 아이들은 대체로 수명이 길지 않지만, 지아는 가족들의 사랑과 의지에 힘입어 지난 10년을 버텼다.
지아는 생후 한 달쯤부터 입으로 음식 섭취가 되지 않았고, 양 팔다리가 움찔거리는 경련 증상을 보였다. 생후 100일쯤엔 이따금 몸을 움찔거렸고, 3~4개월쯤부터는 다리가 뒤로 뻗치고 팔은 펴진 채로 안으로 말리는 듯 온몸이 뻣뻣해지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르고 이를 가는 양상이 수십 차례 5분여간 반복되는 모습을 보이자 다른 병원에서 뇌파검사를 했고, 유아 경련 소견을 받았다. 한 달 반가량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퇴원 후 시간이 지날수록 지아는 깨어있는 시간에 소리를 지르고 활처럼 등이 휘어 뻣뻣해지는 경련이 발생해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에 입원했다. 2차례 유전자 검사를 통해 '희귀난치성 질환' 판정을 받게 됐다.
지아의 건강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아프기 전까지는 이름을 부르면 반응을 보였지만, 현재는 몸이 다시 강직되고 신체적인 움직임과 언어적인 의사 표현이 불가능하다. 최근엔 엄마가 불러도 반응이 없고 고열과 함께 뻗치고 떠는 발작까지 잦아지고 있으며, 숨이 가빠지고 이를 가는 모습 등이 기존보다 길어졌다. 이 때문에 인근 병원 응급실 방문과 입·퇴원을 반복하는 상황이다.
경제적 부담도 크다. 한 달에 드는 입원비만 200만~3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여기에 일주일에 4번 이상 받아야 하는 재활치료비가 30만원 이상이고, 석션과 거즈 등 의료 소모품비도 한두 달에 50만원 넘게 들어간다.
◆한시도 눈 뗄 수 없어… 24시간 돌봄 필요
경련 때문에 엄마는 24시간 지아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심한 경련으로 무호흡 상태가 이어진 경우도 있어 더욱 곁을 지킬 수밖에 없다. 지아의 방은 호흡기와 심전도 검사기 등 위급상황 발생 시 필요한 의료기기가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아가 앓고 있는 병의 특성상 발달이 거의 되질 않고, 침대 생활을 해야 한다. 누워 있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적정량의 재활을 꾸준히 해야 하고, 팔다리 경직을 풀기 위한 마사지 등도 계속해야 한다.
소화기관이 발달하지 않은 것도 엄마가 지아 옆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이유다. 경관식 섭취를 하루에 4~5차례 해야 하는데, 한 번 섭취하면 30~40분은 등을 두드려주면서 소화가 될 때까지 돌봐줘야 한다. 이 때문에 지아 엄마가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은 하루 4시간 정도가 전부다.
◆온 가족이 다 함께 살며 여행 가는 것이 꿈
지아네 가족은 2017년 경기도에서 대구로 이사를 왔다. 아픈 지아를 돌보기 위해서다. 제과제빵 관련 회사에서 일하던 아빠는 대구에서 제과점을 차렸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로 결국 폐업하게 되면서 가계는 어려워졌다. 지아의 치료비 부담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해 나갔지만 이내 한계에 부딪혔고, 지난해 10월 아빠는 치료비 마련을 위한 일자리를 찾아 타 지역으로 떠나게 됐다.
아빠의 빈자리는 1살 터울의 오빠 진우(가명)가 채우고 있다. 진우는 "내 동생은 가장 예쁜 공주님"이라며 지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표현한다. 진우도 최근 학교에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아 6개월째 약물을 복용하고 있지만, 동생과 부모님에 대한 사랑으로 문제행동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 지아를 돌보느라 힘이 드는 엄마에게 긍정의 말로 힘을 주고 있으며,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키고 있다.
여러 어려움에도 지아네는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 아픈 지아를 돌봐야 해 지금은 떨어져 지내지만 언젠가 가족 모두가 함께 모여 살고, 다 같이 여행을 가는 꿈을 꾼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권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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