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 인사를 찾아서] '김천 출신 대구 성장'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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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5-29  |  수정 2024-05-30 08:32  |  발행일 2024-05-29 제25면
"대한민국 '세계화의 길' 연 대구경북…포용성 갖고 세계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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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이 대구에서 성장한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짧은 기간에 괄목할 성장을 이룬 국가다. 세계 최빈국에서 출발해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눈부신 성장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은 대한민국이 거둔 화려한 영광의 이면에는 '한강의 기적'과 '세계화의 기적'이 있다고 말한다. 김천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초중고를 다닌 김 원장은 문재인 정부 때 대통령 비서실 경제보좌관을 역임했다. 일본 경제에 대한 국내의 대표적인 석학인 그는 "1990년대 초 일본서 유학할 때만 해도 우리가 일본보다 잘 살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라며, "위기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도전을 멈추지 않은 한국인의 기질이 짧은 시간에도 기적을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 포철장학회 일본 유학생

김 원장의 인생 여정은 좀 남달랐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갔다. 서울대 경영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1990년 어느 날이었다. 포항제철 박태준 회장의 비서실장이 지도교수를 찾아왔다. 대학원생 중에서 제철장학회 일본 유학생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당시 서울대 경영대 졸업생들은 대부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 유학을 생각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조교를 통해 이 소식을 들은 그의 마음은 심하게 흔들렸다. 유학을 가고 싶어도 돈이 없던 그에게 절호의 찬스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학금 조건이 파격적이었다. 학비와 생활비는 물론 일본어 연수비와 일본 내 여행경비까지 지원해줬다. 또 장학금 지원에 대한 요구 조건이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냥 일본을 마음껏 공부해보라는 굉장히 파격적인 장학금이었다.

포철 장학생으로 일본에 갔지만 시련은 끊이지 않았다. 외국인, 특히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수시로 좌절을 맛봐야 했다. 이론과 실제의 간극에서 오는 혼란도 컸다. 학교에서 읽은 책이나 경영사례들은 모두 일본경제를 칭찬하는 것이었지만 이미 불황기에 접어든 일본의 현실은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그는 지도교수의 동의를 얻어 도서관이 아닌 기업 현장으로 직접 찾아가 연구를 진행했다. 생생한 현장감이 담긴 그의 논문은 일본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나고야 상과대학을 거쳐 일본 최고의 국립대학 중 하나인 쓰쿠바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굴지의 일본 기업을 직접 지도하기도 했다. 김 원장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제 인생의 길을 인도한 것은 대구 대륜중학교 은사였어요. 시장경제에 혜안을 가진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어렴풋하게나마 일찌감치 진로를 결정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日 경제분야 국내 대표 석학
서울대 경영대학원 재학 중
포철장학회 '日유학생' 선발
日교편·굴지 기업지도 이력

시장경제 관련 남다른 혜안
대륜중 은사 영향 진로 결정
늘 "뼛속까지 영남사람" 자부
文정부 땐 靑 경제보좌관도

최빈→개도국 '한강의 기적'
선진국 도약 '세계화의 기적'
전세계 '최단기간' 괄목성장
지금 한국경제 중요한 기로

◆ 한국·일본, 닮은 듯 다른 나라

김 원장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은 매우 닮은 듯 아주 다른 나라다. 동아시아에 나란히 이웃한 두 나라는 국민들의 외모가 비슷하고, 타고난 부지런함과 명석한 두뇌로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뤄낸 공통점이 있다. 또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저성장과 인구소멸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도 닮은 점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두 나라는 위기에 맞서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했다.

"일본은 한때 서독을 추월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었어요. 1989년만 해도 전 세계 시가총액 상위기업 20곳 중에 NTT, 도시바, 소니, 히타치와 파나소닉 등 14곳이 일본기업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 기업들이 썰물처럼 사라지고 단 한 곳도 포함되지 않아요. 이처럼 속절없이 추락한 일본에 비하면 한국은 훨씬 더 역동적인 궤적을 보이고 있어요."

김 원장은 한국이 겪은 두 번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언급했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첫 번째 성장을 통해 세계 최빈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으며, '세계화의 기적'을 겪으며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은 세계화의 과정에서 극명하게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일본은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떨어지고 침체의 시그널이 찾아왔을 때 자국의 내수 시장에 집중했습니다. 흔히 얘기하는 '잃어버린 30년'이 찾아왔지요. 반대로 한국은 현실에 무릎 꿇지 않고 오히려 눈을 돌려 러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세계로 나아갔습니다. 공산주의 국가와도 수교를 맺고, 포용함으로써 시장을 널리 확장시킬 수 있었죠."

그는 대한민국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기까지 대구경북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한강의 기적'을 주도했다면, 노태우 대통령은 북방정책을 통해 세계화의 길을 열어준 장본인이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성장을 주도한 배경에는 보수의 심장인 대구경북의 역할이 지대했습니다."

◆ "TK, 포용성을 갖고 세계로 나아가야"

한일중 정상회의가 코로나19로 중단된 지 4년5개월 만인 지난 26~27일 서울에서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리창 중국 총리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정상들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안정·번영이 공동이익이자 공동책임이라는 것을 재확인하고,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기로 약속했다. 이번 정상회의는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해 뚜렷한 성과를 도출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으면서도 정상회의를 정례화하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원장은 한일중 정상회의에 대해 "지금 한국경제는 매우 중요한 기로에 섰다. 세계화의 기적을 이룬 한국 기업들이 북방영토까지 개척했지만, 자칫 잘못하면 어렵게 만든 시장을 잃어버릴 위기에 놓여 있다"라며 "한국 기업과 우리 국민을 위해서 정부가 대승적 차원에서 친미, 친일을 넘어 친중, 친러까지 포용하는 정책을 수립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스스로 '뼛속까지 영남사람'이라고 표현한 김 원장은 대구경북이 다시 도약하기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대구가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견인한 원동력이 된 지역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 못할 사실이에요. 세계화의 길을 연 것도 대구경북이었어요. 하지만 어느 때부턴가 포용보다는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는 구조가 되어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세계화라는 것은 상대에 대한 인정이고 포용입니다. 세계화의 길을 연 노태우 대통령을 배출한 대구경북이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보다 진취적으로 세계 속으로 나아가고, 세계를 포용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글·사진=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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