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칼럼] 산유국의 꿈, 해몽

  •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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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6-14  |  수정 2024-06-14 07:05  |  발행일 2024-06-14 제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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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산유국의 꿈, 그 꿈자리가 계속 사납다. '용꿈'은 밖으로 내뱉는 순간 '개꿈' 된다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 앞에 꿈 이야기를 직접 말한 게 화를 키웠다. 메시지는 메신저에 의해 좌우되는 건가. 주요 국정 발언이 늘 논쟁으로 비화하는 건 대통령의 비극이다. 하지만 에너지의 98%를 수입에 의존하고, 그럴듯한 지하자원 하나 없이 '사람'이 유일한 자산이라 위로해 온 터에 산유국의 꿈은 그야말로 시름을 한 방에 날린 길몽이었다. 이젠 꿈보다 해몽이 중요하다.

반만년 만에 성큼 다가온 산유국의 꿈, 호들갑도 재 뿌리기도 마뜩잖다. 지금 단계에선 희망과 꿈일 뿐이다.(S&P·3대 글로벌 신용 평가사) 가능성 20%? 지질학적 의미일 뿐 상업적 성공 가능성은 이보다 훨씬 낮다. 그러나 5천억원(시추 비용) 들여 수천조 원의 가치를 얻을 수 있다면 20%의 가능성도 '축복'이다. 140억 배럴은 '슈퍼 자이언츠(초대형 유전)'급이다. 한 세기에 하나 발견할까 말까? 허다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다. 물론 모든 게 불투명하다. 그래서 윤 대통령이 "국민 여러분께서는 차분하게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을 거다. 국민은 이미 차분하다. 대통령과 정부가 앞서 여론을 들쑤시지 않기를 바란다. '유전 개발은 과학영역'이라 되뇌어 온 국민의힘부터 엇박자다. 국회 보이콧 후 돌연 '묻지 마 석유 시추'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여당 스스로 이를 정치 소재화하다니 멍청한 행동이다. 시추 예산권을 틀어쥔 더불어민주당의 심사가 벌써 '십중팔구 실패'(이재명 대표)라며 뒤틀어졌다. 민주당에도 묻고 싶다. 그래서 하지 말자는 건가.

매장량 부풀리기, 주가 조작, 탐사업체 선정, 호주 우드사이드 사(社) 철수 등을 둘러싼 파다한 의혹을 그냥 뭉갤 순 없다. 원활한 프로젝트 실행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미국의 상장 석유사 CEO가 지금과 같은 초기 단계에서 윤 대통령의 대국민 보고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면 증권거래위 제재를 받았을 것이라고 한다. 엑트지오를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 기술 평가 전문기업'이라 소개한 것도 불필요했다. 이 회사 아브레우 고문의 대표 이력인 '가이아나 광구 탐사 멘토링'도 실무에 참여했다는 건지 멘토링만 했다는 건지 불분명하다. 실무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액트지오의 4년 체납은 확인했지만 계약은 문제 없었다"는 석유공사의 해명은 옹색하기 짝이 없다. 연 매출이 3천만원밖에 안 되고 세금도 못 낸 회사에 뭘 믿고 국가 대사를 맡겼는지 궁금하다. 아직 속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

우리는 참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정치 민주화를 이루고, 세상이 놀라워하는 경제성장을 거두었는데, 우리의 불행은 점점 커져만 간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 최고의 자살률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걸 풍족히 이룬 후 찾아왔다. '산유국의 꿈'도 마찬가지다. 화복동문(禍福同門), 복은 불행과 같은 문으로 온다. 넘친 행운이 갑자기 찾아올 때 더 경계하고 진중해야 한다. 아직은 도박성이 강한 도전이다. 희박한 가능성과 반복되는 실패에도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는 게 자원개발이다. '국뽕'에 빠져 경거망동 말고 차분히 기다리며 조심스럽게 미래를 준비하라는 게 행운의 여신이 우리에게 건네는 산유국의 꿈, 해몽이다. 괜한 방정으로 대박 용꿈을 쪽박 개꿈 만들지나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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