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억 칼럼] 핵 무장 없는 비핵화 없다

  • 김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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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6-17  |  수정 2024-06-17 07:20  |  발행일 2024-06-17 제22면
한반도 비핵화 선언 30여년

北 잇단 핵실험 탓 유명무실

계속된 북·중·러 핵 확충에

美 핵 확산 저지서 증강 선회

지금이 韓 자체 핵 무장 好機
[김기억 칼럼] 핵 무장 없는 비핵화 없다
서울본부장
한반도 비핵화 역사는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1년 9월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은 남한 내 주한미군기지에 배치돼 있던 전술핵무기 철수를 발표했다. 같은 해 11월 노태우 대통령이 남한의 비핵화를 선언했다. 이듬해 1월 남북 간 조약 체결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이 나왔다. 형식적 한반도 비핵화가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한반도 비핵화는 잠시뿐, 북한이 연이은 핵실험에 이어 핵무기를 사실상 보유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는 멈췄다. 국제사회의 한반도 비핵화 노력은 이어지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은 헛구호에 그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약속을 믿었던 순진한 위정자들 탓에 대한민국만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힘겨운 상황이 됐다.

최근 미국의 핵 정책 움직임이 심상찮다. 지난 30여 년간 핵무기 확산 저지에 앞장섰던 미국이 핵 정책의 전면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9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북·중·러의 핵 증강에 우려를 표명한 뒤 "핵무기 확대 가능성을 테이블에 올리라는 전문가 위원회의 초당적 요구에 귀기울이겠다"고 했다. 미국의 핵 확산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러시아의 핵 군축 조약 불참 선언, 중국의 2030년까지 핵 탄두 1천개 보유 계획 진행, 북한의 잇단 핵 위협 등 세계 핵 안보 질서가 요동치고 있음에 따른 대응책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1991년 소련과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체결 후 핵 확산을 저지하는 데 주력해 왔다.

이 같은 미국의 핵 정책 변화는 한반도 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최근 방한한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은 "한국의 핵 무장을 미국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트럼프 재집권 시 기용 가능성이 높은 콜비 전 국방부 차관보도 "주한 미군을 중국 견제에 활용하는 대신 한국의 자체 핵 무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렇다면 자체 핵 무장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후 남한도 자체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욕구는 예나 지금이나 높다. 2006년 10월 여론조사(의뢰기관 사회동향연구소)에서는 응답자 67%, 2013년 2월 조사(갤럽)에서는 64%, 2024년 4월 조사(에너지경제신문)에서는 56.5%가 자체 핵무기 보유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국민 과반 이상이 북 핵 위협에 자체 핵 무기 보유로 맞서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대내외적으로 자체 핵 무장 환경은 어느 때보다 좋다. 물론 자체 핵 개발을 위해서는 넘어야 하는 산도 많다. 우선 NTP(핵 확산금지조약) 탈퇴와 이에 따른 국제사회 제재 등을 감내해야 한다. 미국이 핵 우산을 제공하고 있는데 자체 핵무장이 왜 필요하냐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핵 우산은 우리 것이 아니고, 언제라도 접힐 수도 있다. 트럼프는 틈만 나면 주한 미군 철수를 언급하고 있다. 사실상 핵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과 맞서야 하는 상황에서 언제든 접힐 수 있는 핵 우산에 국가 안보를 전적으로 의지할 수는 없다. 당장 자체 핵 무장이 어렵다면 유사시 최단 기간 내에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일본 수준의 근핵보유국(近核保有國) 지위라도 확보해야 한다. 일본은 이미 수개월 내에 핵탄두 6천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50t을 추출해 놓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자체 핵 무장 없이는 진정한 한반도 비핵화는 요원하다. 남한의 핵 무장만이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 자체 핵 무장→핵무기 감축 협상→한반도 비핵화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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