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내 삶은 내가 정하는 것 (2) "이기주의 아닙니다…'아싸(아웃사이더)' 자처해도 옳은 일엔 연대할 줄 알아요"

  •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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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8-09  |  수정 2024-08-09 07:55  |  발행일 2024-08-09 제12면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내 삶은 내가 정하는 것 (2) 이기주의 아닙니다…아싸(아웃사이더) 자처해도 옳은 일엔 연대할 줄 알아요
개인주의자는 혼밥(혼자 밥 먹는 것)·혼영(혼자 영화 보러 극장을 찾는 것)을 즐긴다.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홀로 여행을 떠나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수현·장윤아 기자

언제부턴가 개인의 취향을 존중해달라는 '개취존중' '취존' 등의 줄임말들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이 단어들이 쓰일 땐 주로 '그런 걸(좋아한다고)?'과 같은 딴지로부터 방어막을 칠 때다. 이는 개인의 취향이 그만큼 자주 존중되지 않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집단주의와 '우리'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평범에서 벗어난 이들은 비주류로 인식되며 변방으로 밀려나곤 했다. '개인주의자'도 그런 이들에 해당한다.

개인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요시하고, 개인을 기초로 하고 모든 것을 규정하는 태도다. 많은 사람이 이를 두고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이익만 중요시한다며 비판한다. 하지만 개인주의는 이런 '이기주의'와 다르다. '이타적 개인주의자'의 저자이자 사회학자인 정수복은 한국 사회가 개인주의에 대해 오해와 편견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개인주의자는 전통과 관습을 무비판적으로 따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생각에 쉽사리 동조하지 않는다"며 개인주의자를 "독자적으로 사유하는 생각의 주체"라고 썼다. 이렇듯 자기 자신과의 진실한 관계를 중시하고, 주체로 살아가고자 하는 개인주의자들의 삶을 살펴봤다.

◆혼밥·혼여…손해 봐도 "혼자가 좋아"

"점심시간이네. 밥 먹으러 가자." "언제 한 번 밥이나 먹자" "오늘은 같이 못 먹을 것 같아. 미안해."

'밥'과 관련해 우리가 자주 하고, 듣는 말이다. 한국에서 '밥을 먹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타인과 함께함을 전제한다. 최근 몇 년간 혼자 밥을 먹는 '혼밥'이 대중화돼 더 이상 혼자 밥을 먹는 행위는 유별난 일이 아니게 됐다. 하지만 식당에 가면 여전히 여러 명이서 온 손님이 훨씬 많다. 이 가운데 대학생 박수민(23)씨는 혼밥을 '마스터'했다. 고깃집과 뷔페, 패밀리 레스토랑까지 넓고 사람이 많은 가게까지 혼자 가서 밥을 먹는다. 김씨는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젠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해요. 친구들과 같이 먹는 것도 좋지만, 보통 밥에서 끝나는 게 아니니까요. 카페까지 가고 나서야 비로소 '식사'가 끝나죠. 그때가 되면 이미 기력이 방전돼 있어요"라며 "'혼밥'은 혼자서 조용히 먹고 싶은 음식을 바로 골라 즐길 수 있어 재충전이 돼요"라고 했다.

혼자 여행을 가기도 한다. 여행 계획을 짜본 이들은 안다. 숙소·식당·관광·대여·할인 등 여행 관련 상품은 2인 기준에 맞춰져 있는 것이 많다. 이들은 그런 손해를 감수하고 혼자 멀리 여행을 떠나는 데도 적극적이다. 기자도 4년 전 혼자 제주도에 다녀왔다. 1인이 묵을 수 있는 숙소는 대부분 다른 이용객과 같은 방을 쓰는 '게스트 하우스' 형태였다. 결국 2인 기준의 원룸 숙소를 예약해 혼자 이용했는데, 돈은 더 들었지만 '편안함'을 살 수 있었다. 타인과 하는 여행은 아무리 친하더라도 배려와 존중이 우선이다. 내가 가고 싶은 곳들을 다 가지 못하고, 시간을 자유롭게 쓰지 못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개인주의자들에게 '혼여'(혼자 하는 여행)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여행의 모든 걸 자신이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후 '혼여'의 매력에 빠져 지난해 또다시 홀로 대만으로 떠났다. 도심에서 떨어진 관광지에 방문하려 했는데 대중교통으론 가기 힘든 곳이었고, 면허가 없어 차량 렌트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한국인 단체 투어를 신청했다. 투어엔 혼자 온 사람이 꽤 많았다. 그중엔 기자의 또래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고 우리는 거기서 '혼여족'이란 공통점 하나로 친구가 됐다. 서울에서 온 A씨는 남자친구가 있지만 여행은 늘 혼자 다닌다고 했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면 출국 일정을 맞추는 것부터 일인데, '힐링'하자고 하는 일에 그런 걸로 스트레스 받기 싫더라고요."

MBTI 유형 '내향형 I'
식사도 음주도 혼자일 때 더 만족
가격손해 좀 봐도 혼자여행 즐겨
"대학 진학·결혼, 필수는 아니에요"

개인주의 ≠ 고립주의
공동체 내 자유 제약 필요성 인정
전통·관습 무비판적 동조는 거부
겉치레 없이 행복 찾는 삶의 방식

◆대학 안 나와도, 결혼 안 해도…우리 잘 삽니다!

영국의 천문학자 제임스 브래들리는 "진정한 자유는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 자신이 되고 싶은 대로 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성공적 지표로 여겨지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 많은 사람이 '학벌'이라 답할 것이다. 여기서 학벌은 교육을 받은 정도가 아니라 '대학의 등급'을 의미한다. 대학 진학은 필수가 됐다. 지난해 대학 진학률은 72.8%로 10명 중 7명은 대학에 가는 것이다. 서울지역 언론사에 재직 중인 B씨는 "요즘은 학벌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들 말하지만 아직까지 '대학 어디 나왔어?'와 같은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듣는 게 현실이죠. 대학이 직장 생활의 필수 관문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방증 아닐까요"라고 했다.

이 가운데 사회가 정한 획일적인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사업가 최모(39)씨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자기만의 삶을 개척하고 있다. 공부보단 장사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스무 살부터 창업 공부를 했다.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장사를 연구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후 현재 대구 중구에서 술집을 운영한다.

그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일들이 굉장히 많고, 개인마다 재능과 흥미가 각자 다른데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만이 성공한 삶이라 생각하지 않아요"라며 "내 스스로 가게를 만들고 주체적으로 일한다는 점에서 만족스럽게 생활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독립적인 생활을 지향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1인 가구도 증가세다. 2016년 539만에 불과했던 1인가구 수는 2019년 614만, 2022년 750만가구로 늘어났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결혼 문화에 대한 가치관이 변하면서 비혼도 늘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변화'에 따르면,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청년은 36.4%에 불과했다. 이는 10년 전(56.5%)보다 20.1%포인트 감소한 수치다. 청년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부족한 결혼 자금(33.7%)로 조사됐지만, 그 다음으로 꼽은 '결혼 필요성 못 느낌'(17.3%)도 주목할 만하다. 자신을 비혼주의자라고 소개한 직장인 성유진(29)씨는 "경제적으로 완전한 자유를 얻어도 결혼은 하지 않을 거예요. 혼자 사는 것이 좋고 제 삶의 자유가 1순위예요"라고 했다.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내 삶은 내가 정하는 것 (2) 이기주의 아닙니다…아싸(아웃사이더) 자처해도 옳은 일엔 연대할 줄 알아요

◆"이기주의자? 서로 존중하길 바랄 뿐"

"개인주의자라 해서 특별한 게 없어요. 그저 내가 남을 존중하는 만큼 타인도 내게 그러길 바라는 거죠."

조직과 집단이 중요한 한국 사회에서 개인주의는 이기주의란 오해를 받곤 한다. 튀어서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기에 개성대로 살아가는 '개인'으로서의 삶은 더욱 이해받기 어렵다. 그러나 제대로 우뚝 선 개인이라면 타인과 연대는 물론 공동체를 위해서도 기꺼이 힘쓸 수 있다.

성씨는 자신이 생각하는 회식을 예로 들었다. "회식 자체를 싫어하지 않아요. 건전한 회식은 팀 단합을 위해 좋다고 생각해요. 안 간다 하면 부적응자 취급하고, 술 못 먹는다는 사람한테 술 먹이는 분위기 같은 게 싫은 거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며 베스트셀러가 된 책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저자인 문유석〈원 안〉도 말한다. 개인주의는 세상과의 공존을 거부하는 고립주의가 아니라고. "합리적 개인주의자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이루어 살 수밖에 없고, 그것이 개인의 행복 추구에 필수적임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사회에는 공정한 규칙이 필요하고, 자신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될 수 있음을 수긍하고, 더 나아가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 타협할 줄 알며, 개인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들과 연대한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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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희 기자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 주말섹션과 연극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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