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선균 유작 '행복의 나라' 추창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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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악의 정치재판을 소재로 만든 영화 '행복의 나라'. 〈NEW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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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폭력성에 희생된 개인 포커스
총살형 앞두고 엔딩 대사 '잘게' 각별
'행복의 나라'는 박정희 시해부터 12·12 사태까지 급박하게 돌아간 한국사회를 녹여낸 영화다. 1979년 10월26일, 대통령 암살 이후 단 16일간 진행된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재판을 기둥줄거리로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조합해 만들었다.
'그때 그 사람들' '남산의 부장들' '서울의 봄' 등 10·26 사태를 그린 영화는 이미 여러편이다. 이번 영화가 전작들과 차별화된 점은 무엇일까. 추 감독은 "사실 그날의 사건을 다룬 영화들은 이미 여러편 제작되었어요. 그 시대를 살았던 저는 하나의 사건보다 그 시대가 중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전상두(전두환)라는 권력자를 정점으로 한 시대가 가진 야만성, 그리고 박태주라는 인물을 통해 시대의 폭력성에 희생된 개인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감독은 '박태주'라는 한 이름없는 군인의 삶을 클로즈업 하고 있다. 고(故) 이선균이 연기한 박태주는 정보부장 수행비서관으로, 상관의 지시에 의해 대통령 암살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았다. 실존인물인 그는 대통령 암살사건에 연루된 사람 중 유일한 군인신분으로, 3심제가 아닌 단심제로 형이 확정됐다. 변호사가 살아날 방법을 제시하지만 생사와 관계없이 끝까지 군인으로서 강직함을 지키고, 명예로운 죽음을 택했다.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영화가 한 인물을 미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시나리오를 받고 박태주(실존인물 박흥주)라는 인물의 자료조사를 했는데, 파도 파도 미담이 나왔어요. 자료에 남은 그의 행적도 놀라웠는데 주변의 평가를 보더라도 인품이 훌륭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고 출신으로 공부를 잘했는데, 집안 형편 때문에 육사를 갔고, 거기서도 거의 최우수로 졸업했어요.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전방과 월남전 등을 모두 경험했죠. 권력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실제 영화대사처럼 슬래브집에 청빈한 삶을 실천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영화에 담지는 못했지만 그 분이 총살을 당할 때도 '대한민국 육군 만세'라고 하며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를 미화시킬 의도는 없지만 뼛속 깊이 군인이었던 인물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이선균의 마지막 유작으로 관심을 모은다. 따라서 감독에게도 이선균의 이름이 각별하게 다가온다. "마지막 엔딩에 총살형을 앞둔 이선균이 '잘게'라는 대사를 하거든요. 원래 시나리오에 있던 대사였는데, 편집을 하면서 혹여 사람들이 이걸 너무 의도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 어떡하지 하며 내심 걱정을 했어요. 제가 용기가 없었는지 볼륨을 좀 낮게 대사를 삽입했는데, 시사회 때 영화를 보면서 '아, 좀 더 크게 할 걸'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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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온 직장인 문경이 휴식을 위해 떠난 문경에서 보내는 2박3일을 그린 영화 '문경' <비아신픽처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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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고 자란 문경, 어렸을 적 추억
특별한 동행 속 사회적 참사·슬픔 녹여
영화 '문경'은 아름다운 풍경과 힐링이 있는 영화다. 쉼없이 달려오다 번아웃된 직장인 문경이 휴식을 위해 떠난 경북 문경에서 비구니 스님 가은과 강아지 길순을 만나 2박3일 동안 특별한 동행을 이어가는 내용이다.
인물들 각자가 품은 사연들이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가운데 청정지역 문경이 가진 무공해 자연이 어우러져 그림처럼 펼쳐진다.
신동일 감독은 아버지의 고향이자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문경을 대중에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고 밝혔다.
문경에서 머물던 어렸을 적 기억을 더듬으며 작업에 임했다는 그는 영화 구석구석에 어린 날의 추억을 새겨 넣었다. 예를 들면 작품의 주요한 배경이 되는 선유동 계곡은 후배들과 함께 캠핑을 갔던 장소고, 문경과 가은이 잠자는 시골집은 감독이 실제로 살았던 집이다.
신 감독은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가을에 후배랑 같이 2박3일간 문경으로 여행을 가서, 처음으로 차박을 했어요. 대자연을 벗삼아 식사를 준비하던 중 갑자기 비가 내려서 텐트로 이동했는데 그것마저도 행복했죠. 다음날 선유동 계곡을 갔는데, 딱 보는 순간 여기서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결심이 서더군요. 너무나 위대한 자연 앞에서 보잘것 없는 인간의 모습이 겹치면서 영화적으로 문경을 표현하면 재밌겠다 싶었어요."
영화 '문경'은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는 로드무비지만 민감한 사회적 이슈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인천 호프집 화재사건을 암시하는 장면들을 곳곳에 숨겨두었다.
감독은 "영화를 찍기 전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는데, 분노와 슬픔을 느꼈다. 예술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이슈를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면서, "사회적 참사에 대한 슬픔이 자연스럽게 녹아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조금 오래된 사건이지만 인천 호프집 참사를 가져왔다"고 전했다.
감독은 영화 '문경'을 촬영하면서 만났던 친절한 시민에 감사와 애틋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보통 영화 촬영은 엄청난 민폐를 끼치는 행위입니다. 주민들 수면을 방해하고, 이것 저것 불편하게 하는 것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이번 문경 촬영에서는 지나가던 어르신들이 먼저 반갑게 맞아주고, 음료수와 옥수수를 쪄다주기도 하셨어요. 이렇게 행복하게 촬영을 할 수 있구나 하면서 행복하게 일했던 기억이 납니다"라고 전했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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