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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서울본부 정치부 선임기자 |
"얼마나 많은 무명 선수들이 피눈물을 흘렸을지 생각해 봤는가? 그들은 선수 생명을 담보로 싸우고 있다."
체육계에 개인적인 인연들이 있다. 이름을 밝힐 순 없지만 '스타 선수'에서 '지도자', 단체의 대표로 널리 알려진 인사들이다. 그만큼 말의 신빙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 이들과 만나 나눈 대화는 단연 올림픽이었다. 성적과 선수에 대한 칭찬, 격려도 있었지만 주된 이야기는 '협회'였다.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에서 촉발된 협회의 문제에 대해 각자 종목에서 이야기가 나왔다. 종목이 달라 잘잘못을 따지진 않았다면서도 "그럴만하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해석이었다. 아직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에는 '구식 지도자'가 너무 많아 체질 개선은 꿈같은 이야기라고도 했다.
이번 올림픽의 스타들 중 일부가 고질적인 병폐인 파벌을 극복했다는 충격적인 증언도 들을 수 있었다. 선수 선발의 기회마저 박탈될 가능성도 있었지만 선수와 지도자가 힘을 합쳐 겨우 극복했고 협회는 이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는 것이 체육계의 전언이다. 일부 종목에선 제대로 된 지도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선수 혼자 메달을 따낸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올림픽 현장에서 세계 타 선수들이 보고 있는데, 지도자의 안일함으로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웠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전해졌다.
가장 아픈 말은 '무명 선수들'의 이야기였다. 안 선수는 그나마 성적을 냈기 때문에 이슈가 된 것이지 현재 수많은 선수들이 협회나 지역 체육회의 갑질로 울분을 토하는 선수들이 아직 많다는 것이 이들의 이야기다. 우리 지역에서 고(故) 최숙현 선수의 안타까운 사례가 발생하고 이후 스포츠윤리센터가 설립되는 등 변화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여전히 갑질·불공정 사례는 숙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 자료에 따르면 스포츠윤리센터가 처리한 사건(1천682건) 중 절반 이상(958건·57%)이 각하 처리됐다. 이는 가해자와 원치 않는 합의나 협회나 소속팀의 압력이 작용하는 사례가 상당수라는 것이 체육·정치권의 공통된 지적이다. 피해자가 선수생명을 걸고 신고를 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에는 신고 자체를 포기하는 상황이 빈번하다는 설명이다. 소위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체육계 사회에서 잘못된 점을 지적하며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직 수많은 엘리트 체육 꿈나무들이 각급 체육협회의 파벌주의와 권위주의적인 행태, 편파적이고 불공정하게 주어지는 기회들로, 꿈을 포기하고 좌절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큰 안타까움이 들었다.
다행인 점은 올해 국회 국정감사가 '체육계'에 집중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한축구협회의 홍명보 감독 선임 논란에서부터 대한체육회, 지역 체육회, 각급 협회까지 다양한 대상이 도마위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선수들이 용기를 냈다면 이제 정치권이 화답할 차례다. 여야가 너나 할 것 없이 체육계의 문제를 정상화시켜주길 기대한다. 정치권에서 정쟁을 멈추고 민생 문제라 할 수 있는 체육계에 대한 문제점을 파고들어 대안까지 마련해줬으면 한다. 무엇보다 '자유'를 중시하는 윤석열 정부가 체육계에 대해서도 자유와 공정의 가치를 실현해 주길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에서 직접 나서 스포츠 윤리센터에 대한 역할·지원 강화와 체육인들의 재교육 등 다양한 방안을 풀어야 한다. 다음 올림픽까지 이 부분이 조금이라도 개선돼 다시 한번 '역대급' 성적을 낼 수 있길 기대한다.
정재훈 서울본부 정치부 선임기자

정재훈
서울본부 선임기자 정재훈입니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을 출입하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