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천지 영양의 숲과 마을 .7] 문바우 마을 시가 있는 아름다운 임도

  • 류혜숙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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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9-12  |  수정 2024-09-12 07:47  |  발행일 2024-09-12 제14면
반변천 둑길 쉬엄쉬엄 걷다보면 영양 문인의 詩 산길 따라 흐르네

[별천지 영양의 숲과 마을 .7] 문바우 마을 시가 있는 아름다운 임도
영양 '에코그린센터'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900m 정도 나아간 지점에 있는 '시가 있는 아름다운 임도'. 문암리의 자연마을인 홈거리가 보이는 도롯가에 산림청이 꼽은 '아름다운 임도'가 있고, 숲으로 드는 길 따라 영양 출신 시인들의 시판이 서 있다.

문암삼거리. 남쪽으로 영양읍과 연결되고 동쪽으로는 수비면 지나 울진 평해로 이어지며 서쪽으로는 일월산 동북 자락을 밟고 봉화로 넘어가는 삼거리다. 일월산 대티골 뿌리샘에서 퐁퐁 솟은 반변천이 조금씩 품을 넓혀 여기서 문상천(門上川)을 만나 함께 영양읍으로 간다.옛날 이 세 갈래 길에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바위는 꼭 대문처럼 생겨서 문바우라 불렀다. 1600년경 강(姜)씨라는 사람이 문바우로 들어왔다. 그는 반변천변 골짜기에 터를 잡고는 마을 이름을 문바우라 했다. 그곳이 지금의 일월면 문암리다. 문바우는 도로 확장으로 사라졌지만 마을은 지금도 문바우라 부른다.

[별천지 영양의 숲과 마을 .7] 문바우 마을 시가 있는 아름다운 임도
영양 '에코그린센터'는 문바우 마을의 체험과 휴양을 위한 시설로 2016년에 문을 열었다.

◆슬렁슬렁, 자박자박 걷는 체험 휴양마을 '문바우 '

삼거리에서 일월산을 향해 간다. 삼거리슈퍼와 한 칸 쪼끄만 문암초소와 문바우 쉼터가 있는 정감 어린 길목에서 쭉 뻗어 나가는 도로 곁으로 펼쳐지는 넉넉한 너비의 들을 본다. 문암리는 영양군에서 비교적 넓은 농지를 가진 마을이다. 고추와 벼농사가 주지만 땅속에서 나는 과일이라는 야콘, 아삭아삭 놀라운 사과,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다는 어수리, 산나물의 제왕이라는 곰취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한다. 특히 일월산 깊은 골에서 채취하는 고사리, 금죽, 방풍나물, 다래순, 싸릿대, 잔대, 고비 등의 산나물은 아예 약이다.

반변천을 가로지르는 좁은 콘크리트 다리 너머에 아담하고 담백한 숲이 있다. 지나가는 방랑자를 불러 세우는 상쾌한 종소리 같고, 선량한 부인이 오래 가꾸어 내놓은 선물 같은 정원 같다. 금줄 두른 당산나무가 있으니 당 숲이라 해도 좋겠다. 천변의 몇 그루 나무가 수면으로 몸을 기울여 그늘을 드리운다. 물이 맑다. 가재가 살고 버들치가 살고, 민물고기 잡아 회로도 먹는다는 일급수다.

옛날에는 물 반, 고기 반이라 아침에 밥 안치고 나와 고기 잡아 반찬 했다고 한다. 남은 민물고기는 쪄서 말려두었다가 조림으로 먹고, 일월산 산나물을 넉넉히 넣어 어죽으로 먹고, 제사에도 썼단다. 이 일대는 깊은 곳과 얕은 곳이 골고루 있어 물놀이 하기에도 좋다. 당산나무 숲 너머 제법 큼직하게 자리한 하얀 박공집은 문암정미소다. 문암리의 너른 들을 굽어보며 '모두 나의 일'이라는 듯 으쓱 당당하다.


세 갈래길에 대문처럼 생긴 바위 있어
문바우라 부르다 마을이름 문암리로

문암초 있던 자리 에코그린센터 오픈
휴양하며 산나물 채취·반딧불이 탐험
지역 시인 작품 읽으며 임도 걷는 낭만
자생화공원까지 마실권역 보물 가득



먼 하늘가 평평한 산정에 방송국 송신탑이 봄 새싹처럼 아슴아슴 보인다. 일월산이다. 산 아래들에 반쯤 파묻혀 잘 익은 홍시 빛깔의 박공지붕을 들어 올린 산장 같은 집은 '에코그린센터'다. 문바우 마을은 농촌체험휴양마을이다. '에코그린센터'는 문바우 마을의 체험과 휴양을 위한 시설로 2016년에 문을 열었다. 센터에는 숙박할 수 있는 4개의 방과 세미나실, 먹거리를 직접 준비할 수 있는 주방, 일월산 산나물을 맛볼 수 있는 식당 등 편의시설이 있고 기하학적 모양의 글램핑장 3동, 바비큐장, 족구장, 음수대, 원두막 그리고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다. 이곳은 원래 문암초등학교가 있던 자리다. 1937년에 개교해 1천365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94년 폐교된 학교는 20여 년 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에코그린센터로 새롭게 단장됐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 문암리의 옛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모르는 사람들인데 반갑고 처음 보는 풍경인데 친숙하다. 아주 오랜만에 옛 사진첩을 펼친 듯하다.

문바우 마을에서 운영하는 체험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봄에는 전통방식으로 장을 담그고, 갓 오른 산나물을 채취하고, 채취한 산나물로 장아찌를 만든다. 여름에는 반딧불이 탐험에 나서고 가을에는 고추를 따고, 사과를 따고 야콘을 캔다. 손두부를 만들고, 일월산의 자생화를 만나고, 피톤치드 가득한 숲길을 걷는 일은 연중 언제든 가능하다. 마을에서 가장 추천하는 것은 슬렁슬렁 자박자박 걷는 것이다. 마을로, 들로, 숲으로, 반변천 둑길을 따라, 사과밭 고랑의 들꽃 속으로, 마냥 걷는 일이다.

◆시를 보면 숲을 잊고 숲을 보면 시를 잊는 '아름다운 임도'

그렇게 슬렁슬렁 걷다 보면 '시(詩)가 있는 아름다운 임도'도 만난다. 에코그린센터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900m 정도 나아간 지점이다. 문암리의 자연마을인 홈거리가 저만치 보이는 도롯가에 산림청이 '아름다운 임도'로 꼽은 길이 있고, 숲으로 드는 길 따라 영양 출신 시인들의 시판이 서 있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첫걸음은 조지훈의 '낙화'다. '세월이여! 어느새 날 예까지 끌어왔느뇨.' 오일도의 '가을은'이 이어진다. '가느다란 모가지 핏빛 얼굴을 추켜들어라.' 이병각의 '너의 아편꽃'이다. '황금파도 들 복판에 맑은 시내 흘러가고 목화는 구름과 같이 뭉실뭉실 피는 곳,' 조애영의 '망향가'다. '은하 푸른 물에 머리 좀 감아 빗고 달뜨걸랑 나는 가련다.' 이병철의 '나막신'이다.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시도 이어진다.

문암리 임도는 구불구불 완만한 경사로 3.52㎞ 북동진해 수비면 계리에 닿는다. 시는 영양 출신의 이름난 문인과 한국문인협회 영양군지부 회원의 작품들이다. 숲으로 난 길을 걸으며 시를 본다. '산행은 소곤소곤 친구라 하지 않던가' 김명동의 '일월산 외씨버선길'이다. 쭉쭉 뻗은 낙엽송의 황홀에 마음을 뺏긴다. 숨어서 울고 또 노래하는 새들에게 귀 기울인다. 수 없이 휘어지는 길, 시를 보면 숲을 잊고 숲을 보면 시를 잊는다. 그러나 돌아와 떠올리면 숲과 시는 하나였다. 이따금 미소로 떠오르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별천지 영양의 숲과 마을 .7] 문바우 마을 시가 있는 아름다운 임도
영양 일월산 자생화공원은 꽃향유, 하늘매발톱, 벌개미취, 일월비비추, 쑥부쟁이, 과꽃, 구절초, 낙동구절초, 상사화, 동지꽃, 하늘말나리 등 64종의 야생화와 1만 그루가 넘는 향토 수종의 조경수가 자라나는 정원이다.

◆문바우에서 대티골까지, 자박자박 마실 가자

문암리 다음 마을은 용화리다. 두 마을을 묶어 '일월산 마실권역'이라 표현한다. 문암리 문바우 마을에서 홈거리, 용화리 벌매와 큰거리를 거쳐 대티골까지 일월산의 동남 자락 반변천에 깃든 '마실'들의 결속이다. 마을 주민들은 운영법인을 설립해 스스로의 복리 향상과 도농 교류를 통한 활력 증진을 위해 한마음으로 노력했다고 한다. 그 결과 2012년 농촌 마을 종합개발사업 '일월산 마실권역'에 선정된다. 2016년까지 기반을 구축하고, 2019년까지는 권역의 자발적인 발전을 유도하는 자립단계에 이르고, 2021년까지 지속 가능한 발전을 확립하는 혁신단계에 도달하는 10년간의 사업이 추진됐다.

벌매에는 발효문화관이 있다. 윗대티에는 치유의 숲이 있고 아랫대티에는 일월산 자생화 공원이 있다. 문바우 마을에는 에코그린센터와 시가 있는 아름다운 임도가 있고, 홈거리는 외씨버선길의 영양연결구간 상에 자리한다. 홈거리에서 반변천 둑방길과 오솔길과 데크길을 따라 징검다리를 건너면 일월산 자생화공원이다.

일제강점기 광물 수탈을 위해 일월산 광산에서 캐낸 금, 은, 동, 아연을 골라내고 제련하던 이곳은 이제 꽃향유, 하늘매발톱, 벌개미취, 일월비비추, 쑥부쟁이, 과꽃, 구절초, 낙동구절초, 상사화, 동지꽃, 하늘말나리 등 64종의 야생화와 1만 그루가 넘는 향토 수종의 조경수가 자라나는 정원이다. 여기서 외씨버선길 치유의 길이 시작되고 아랫대티의 마을 길과 계곡 길로 이어져 윗대티의 치유의 숲으로 향한다. 마을들은 모두 연결된다.

그 길에 이끼 낀 계단과 언제든 벌렁 누울 수 있는 정자가 있고, 담장 너머 풍겨오는 산나물 마르는 냄새와 마을 정미소에서 도정기 돌아가는 경쾌한 소리, 반변천의 맑은 물과 폐까지 시원해지는 청정한 공기, 비옥하고 너른 들과 건강하게 자라나는 곡식들이 있다. 잣나무가 늘어선 좁장한 오솔길이 있고 주민들이 직접 다리를 놓고 다듬은 물길과 마을 길이 있으며 물가 산 밑에 커다랗게 입을 벌린 폐광과 폐광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10여㎞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단풍나무 가로수, 어둠 속에 고개만 들면 볼 수 있는 은하수, 그리고 일월산이 있다. 이 모두가 '일월산 마실권역'의 자원이고, 문바우 돌문 너머 쏟아지는 보물이다.

글=류혜숙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영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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