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억 칼럼] 아직 끝나지 않은 실미도의 아픔](https://www.yeongnam.com/mnt/file/202410/2024101301000383000014721.jpg)
이 영화로 국가가 숨기고 싶었던 북파공작원의 존재와 실상이 세상에 확연히 알려졌다. 실미도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적 역사를 간직한 '아픔의 섬'이 됐다. 영화 개봉 한해 전인 2002년 3월과 9월 북파공작원 출신 인사들이 국가 보상을 요구하며 서울 도심에서 LP 가스통에 불을 붙이는 등 과격 시위를 벌였다. 그 당시 대부분 국민들은 북파공작원의 존재 자체도 몰랐다. 그들의 과격 시위에 놀랐고, 부정적 시각이 많았다. 영화 실미도는 북파공작원의 존재를 각인 시켰을 뿐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꿔 놓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53년 6·25 휴전 이후 1972년7월 남북공동성명까지 1만여 명의 공작원을 북한에 보냈고,7천700여 명을 실종처리했다.북파공작원들은 임무 수행시 적에게 붙잡히면 간첩으로 취급 받았고,정부는 정전 협정 위반을 차단하기 위해 북파공작 활동 자체를 부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주검으로 돌아와도 회수가 불가능 한 것은 물론, 임무 수행 중 전사임에도 정부의 예우나 보상도 주어지지 않았다. 오랜시간 북파공작원은 존재 자체도 부정 당했다. 다행히 2002년 법원으로부터 북파공작원의 실재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2년 후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 등이 국회를 통과해 늦었지만 북파공작원에 대한 보상의 길이 열렸다. 이 법을 통해 국가 유공자 인정과 함께 일정액의 보상금도 지급됐다.
문제는 이 법의 대상에 북파공작원을 지휘하고 같은 임무를 수행한 장교 신분이었던 북파공작팀장들은 제외 됐다는 것이다.법 제정 당시 국방부는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팀장들을 대상에서 제외 시켰다.공작팀장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북파공작팀장연합회가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오현득대한민국 북파공작팀장연합회장은 "팀장들도 공작원들과 동일한 임무를 수행했다. 장교라는 이유로 유공자 인정과 보상에서 제외 한다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며 "팀장들은 음지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는 것을 인정 받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국가유공자로 인정 받기를 원한다.보상은 예산범위내 최소한이라도 좋다"고 밀했다.연합회 회원은 1천여 명이고,임무 수행 중 100여 명이 순직했다.지난 2월에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국민의 힘 우신구 의원이 "특수임무 유공자들과 함께 임무를 수행했으나,장교라는 이유로 보상과 유공자 선정에서 제외 됐는데, 이들에 대한 보상과 유공자 인정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당시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특수임무 유공자 정책 개선과 함께 장교에 대한 문제들을 심층 검토 중"이라고 답변했다.그러나 아직 구체적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 대한 예우와 보상은 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하고,가장 빠르게 이루어져야 한다. 신분으로 보상 여부를 저울질 해서는 안 된다. 국가는 늘 숭고한 이들의 희생으로 존속해 왔다. 북파공작팀장들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는 날쯤이면 실미도의 아픔도 사라지지 않을까.
김기억 서울본부장

김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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