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런 답사를 위해 영국에 방문한 박재열 경북대 명예교수가 스코틀랜드 디강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박재열 교수 제공 |
박재열 교수의 신간 두 권. 〈북랜드 제공〉 |
자유롭고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도 의로운 면모가 있는 바이런의 이야기는 재미있다. 인간의 선과 악을 모두 지닌 입체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 그에 관한 자료는 많지 않다. 영문학을 가르친 박 교수는 30년 전 바이런에 관한 수업을 하려 했지만 당시 우리 문화권에선 마땅히 읽을 전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수십 년간 바이런이 살아온 흔적을 좇았다. 방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연구해 나온 것이 이 책이다. 박 교수를 만나 신간 집필 과정과 바이런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개인으론 방탕했지만 사회엔 정의로웠던 인물, 가감없이 전하고 싶습니다"
바이런이 수시로 드나든 존 머리의 출판사 내부. |
한마디로 인간적인 매력 때문이다. 바이런은 삶 자체가 매우 다채롭고 엽기적이다. 그도 셰익스피어처럼 각양각색의 인간을 탐구해 작품에 담았지만, 저 자신도 인간 속성을 다 지녔다. 보통 사람은 '빨주노초파남보'를 지녔다면, 바이런은 적외선과 자외선 너머까지 포함된다. 그의 삶에서나 작품에서나 새로운 인간형을 만나는 재미가 컸다.
▶국내 시중에 바이런에 관한 자료는 별로 없다. 바이런 전기를 쓰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듯하다.
우리 앞 세대는 일어로 번역된 바이런의 시를 읽었지만, 우리 세대는 그런 기회도 없었다. 영어판 바이런 전기를 몇 종 읽고 그와 관련된 여러 자료를 종합해 바이런의 삶을 짜맞춰 나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조선왕조실록까지 들췄다. 작품을 다 읽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 그러던 중 바이런의 절친 홉하우스가 쓴 일기를 알게 됐다. 이는 멋진 참고서가 됐다. 바이런은 삶의 많은 부분을 그와 함께했는데, 그는 얼마나 꼼꼼하게 여행과 바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모른다. 그의 일기가 없는 기간은 마치 전깃불이 꺼진 듯 캄캄했다.
다채로운 삶 살다 간 바이런
국내엔 그에 관한 자료 부족
영국·그리스·튀르키예 등지
그의 발자취 따라 곳곳 여행
향후 미소개 작품 번역할 것
▶책에서 독자가 바이런을 이해하는 데 어떤 부분을 가장 중점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나.
적나라한 그의 인간성이다. 방탕, 사치, 성적 욕망, 부도덕, 패륜, 그리고 의리, 정의감, 동정심을 가감 없이 그대로 적었다. 바이런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살았을 때부터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했다. 하지만 바이런을 알기 위해선 그의 적나라한 인간성을 아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웃과 사회에 누구보다 자애롭고 정의로웠다. 하인 중 그를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또 평생 자신이 솔직하길 바랐다. 그렇지 못할 때 가식이 되고, 체면치레가 된다고 믿었다. 많은 사랑을 나눴지만 사랑을 강탈한 적은 없었다. 즉 선과 악을 다 지닌 모순덩어리 인간이었다. 소크라테스나 맹자가 봤으면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바이런의 저택 '뉴스테드 애비'. 풍경 자체가 호사스러운 낭만이고 역사였다. |
1999년 연구년(학교나 연구 기관에서 자유로운 연구 활동을 갖도록 하기 위해 1년 정도씩 주는 휴가)을 맞아 한 달 이상 바이런의 발자취를 찾아 유럽을 떠돌았다. 튀르키예,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등지였다. 1984년에 이미 영국, 벨기에,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그리스 등을 여행했는데 바이런의 행로와 겹치는 곳이 많았다. 놀라운 건 200년 전에 바이런이 살았던 집이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고 주변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6년에 다시 영국에 가서 그의 유년시절의 거리와 학교, 외가, 처가, 매가, 처고모가 등과 런던의 중심부를 발로 뛰며 근접 촬영을 했다.
▶바이런의 흔적이 깃든 곳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어디인가.
그의 저택 '뉴스테드 애비'와 그의 무덤이 있는 '허크널 교회'다. 두 번씩 갔다. 다 허물어진 수도원 건물에도 그가 사용한 방과 복도는 아주 호화스러웠다. 밖은 아름다운 호수가 있고 숲으로 이어졌다. 풍경 자체가 호사스러운 낭만이고 역사였다. 바이런이 눈을 맞으며 오거스터와 함께 그곳으로 갈 때를 묘사하면서도 실제 내가 보고 느낀 것을 이번 전기에 많이 넣었다. 그의 시집을 출판한 런던 출판사도 찾았다. 바이런의 친구이자 출판업자인 존 머리의 5대손이 여전히 가업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같이 사진을 찍었는데 그는 오늘날 바이런 전기에서 5대조가 정당한 대우를 못 받는다고 계속 궁시렁거렸다. 나도 그를 전기에서 '약은' 사람으로 묘사할 수밖에 없었다(웃음).
바이런이 묻힌 허크널 교회. 수도원이지만 그가 쓴 방과 복도는 호화스럽다. |
T.S. 엘리엇은 '몰개성 이론'에서 작가는 작품을 만든 촉매일 뿐 작품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했다. 이 이론에 가장 맞지 않는 시가 바이런의 시다. 장시인 '차일드 해롤드의 순례'와 '돈 주앙'은 바로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또 작품의 여성 등장인물은 자신의 '고지식한' 아내를 풍자하거나 누나 오거스터에 대한 그리움의 암시일 때가 많다.
▶책 제목처럼 그의 생애에서 '사랑'과 '유랑'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바이런은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유로운 사랑을 즐기고 살았다. 사랑과 유랑은 그의 작품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그의 시는 사랑과 유랑에서 얻은 느낌이나 체험으로 된 것이 많다. 독서에서 스토리를 얻은 것도 있지만 디테일은 역시 자신의 사랑과 유랑에서 얻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그는 어떤 사람을 사랑할지, 어디로 갈지 사전 계획이나 원칙이 없었다. 늘 바람 부는 대로였다. 사랑은 예상치 않게 다가왔고 그 사랑을 따라 흘러갔다. 사랑에 따른 유랑이 아니라면 이국적인 문화나 예술에 이끌려 유랑한 것이다.
바이런형 주인공은 그의 작품에 자주 나타나는 신비한 인물이다. 그 주인공은 우울해 말을 잘 하지 않는다. 가슴에 시커먼 비밀 덩어리가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비밀은 가족 간의 불륜이 원인일 때가 많다. 바이런 스스로가 오거스터와의 근친상간의 비밀을 꾹 누르고 살지 않았나. 그 주인공은 우울해 보이지만 사건의 자세한 묘사가 없기에 뭐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독자가 메워야 할 부분이다.
바이런이 다닌 애버딘 문법학교의 바이런 동상. |
그의 작품을 번역해보고 싶다. 그는 다작을 했다. 사랑을 끝낸 한밤부터 새벽까지는 꼭 작품을 썼다. 그의 작품은 19세기에 큰 인기를 끌었지만 오늘날은 잊혀버렸다. '워너'는 당시 가장 많이 무대에 오른 작품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런 것들을 번역해 소개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신간 출간 소감 한마디 부탁드린다.
바이런에 취해 그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쓰고, 천연색 사진도 여러 장 넣었다. 그러다 보니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 책값이 비싸졌다. 일반 독자들이 접근하기엔 부담이 될 듯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자기만족을 위해 괴물 하나를 세상에 내놓은 기분이다.
글=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사진=박재열 교수 제공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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