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또 다른 가치를 만드는 예술](https://www.yeongnam.com/mnt/file/202410/2024102201000699500027201.jpg)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했을 때 소수언어인 한국어로 된 한강의 작품을 번역해 소개한 번역가의 길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 느껴졌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번역한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는 영문학을 전공하고, 한국어를 독학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 문학을 번역한 계기에 대해 "중국문학이나 일본문학은 많이 소개되지만, 한국이 중요한 나라이고 경제가 발전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베일에 싸인 나라였다"고 했다. 그는 이외에도 한강의 '소년이 온다', 배수아의 '에세이스트의 책상 ', 안도현의 '연어' 등 한국 작가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했다.
한강의 수상에 앞서 다른 한국 작가들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하지만 매번 불발됐는데, 그 이유 중 하나로 한국어가 갖는 특유의 뉘앙스를 영어 등 다른 언어로 번역했을 때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다는 점이 꼽혔다.
그렇다 보니 분야는 다르지만, 한국 공연의 해외 진출 초창기를 되돌아보면 대사가 없는 '넌버벌' 작품이 주를 이뤘다. 외국 작품을 한국에서, 한국 작품을 해외에서 선보일 때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무너트리는 게 모두 관건이었다. 대구 무대에 오른 외국 작품, 해외 무대에서 선보인 대구 예술인의 작품을 보면 대사가 있는 공연은 '현지화' 과정이 빠지지 않는다. 2017년 제11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딤프)에서 선보인 뮤지컬 '스팸어랏'은 매우 영국적인 유머 코드로 가득 찬 작품이지만, 한국·대구에 맞춘 대사와 자막으로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지난 8월 한 달간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EG뮤지컬컴퍼니의 뮤지컬 '유앤잇(YOU&IT)'은 현지 관객에게 통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영국 현지 창작진이 참여하는 '현지화'를 거쳤다.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담은 예술작품이 다른 문화적 배경의 독자·관객에게 소개되고 인정받는 건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처럼 개인적인 성공이자 국가의 위상이 높아지는 일인 건 분명하다. 문화체육관광부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문학의 국내외 저변 확대와 해외 진출 확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다른 문화권에 사는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한강 작가가 뉴욕 타임스 기고를 통해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집필 과정에서 제2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등을 조사하다 알게 된 것을 이야기한 게 문뜩 떠오른다. 한강 작가는 모든 전쟁과 학살에는 인간이 국적, 인종, 종교,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인간 이하(subhuman)'로 인식하는 임계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어쩌면 서로의 예술작품을 접하며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반목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첫 단추가 될지도 모르겠다. 최미애 문화부 선임기자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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