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정치권의 비생산적 갈등

  • 서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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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2-02  |  수정 2024-12-02 07:07  |  발행일 2024-12-02 제22면

[취재수첩] 정치권의 비생산적 갈등
서민지기자 (디지털콘텐츠팀)

이번 취재수첩을 쓰기 전, 과거에 쓴 취재수첩을 찾아봤다. 여러 개의 항목 중 정치 출입을 하고 나서 1개월 2주가 된 시점이었던 지난해 3월, '우리 정치권의 갈등'을 주제로 쓴 글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당시 '초짜'의 눈에 비친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적잖이 충격이었나보다. '네거티브 수위는 점점 거세지는데 정책 의제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은 당최 찾아볼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갈등만 남았다.' '(우리 정치권에서 갈등의) 순기능이 발현될 수 있는 구조이기는 할까.' 등의 표현으로 볼 때 내 편끼리도 반목하며 갈라지는 모습이 실망스러웠던 것 같다.

그런데 그 후 1년 8개월간 우리 정치를 돌아보면 당시 갈등은 '순한 맛'에 불과했다. 그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갈등을 숱하게 목격했다. 그사이 탄생한 제22대 국회에선 극단적 여소야대 구도 탓에 '야당의 법안 강행 처리→대통령 거부권 행사→국회 재표결→폐기'라는 일종의 알고리즘이 정립됐고, 정쟁은 쳇바퀴 돌듯 반복되고 있다. 대통령의 미숙한 국정운영과 거대 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도 정쟁을 부추기는 주된 요인이다.

대구경북지역에서 정치 분야를 취재해 온 기자의 시각에서 보자면, 수많은 갈등의 가짓수 중에서도 가장 볼썽사나운 건 국민의힘이 집권 여당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자중지란 하는 모습이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는 표현이 지금의 국민의힘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지난 7·23 전당대회 과정에서 당 대표 후보 간 비방전·폭로전은 그 비방과 폭로가 진실에 근거한 것이냐의 여부를 떠나 보는 이로 하여금 정치 염증을 느끼게 했다. 분열의 씨앗을 마구 뿌리면서 '전당대회가 아니라 분당대회'라는 자조적 평가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그 후유증은 한동훈 대표 체제 출범 4개월이 지나도록 숙지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엔 '당원게시판 논란'으로 화룡점정으로 치닫는 중이다. 당원게시판 내홍 불씨는 오는 10일 예고된 김건희 여사 특검법 재표결에 옮겨붙을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야당 사법리스크에 따른 반사이익을 얻기는커녕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모습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건 국민이 정치권의 '비생산적 갈등'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민생을 돌보는 것은 정치권의 당연한 역할임에도, 어느 순간 당연한 명제가 되지 않을까 봐 걱정이다.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에선 이견이 있어야 하고, 자유로운 토론과 갈등도 병행돼야 하지만 최소한 그 주제는 생산적이어야 한다. 지금의 비생산적 갈등은 공멸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서민지기자〈디지털콘텐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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