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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쯤 대구 중구 CGV대구한일 앞에서 열린 대구시민시국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박영민기자 ympark@yeongnam.com |
'박근혜 대통령 탄핵' 트라우마를 한동안 겪은 대구 시민들은 7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불성립소식에 희비가 엇갈렸다. '보수의 심장'으로 인식된 대구지역 곳속곳에선 이날 분노를 폭발하며 분기탱천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들이 교차했다.
이날 오후 5시 동대구역 맞이방 TV 앞.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 결과를 지켜보기위해 시민들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비상계엄' 선포 사태부터 해제, 대통령 대국민 담화 등 일련의 상황들에 대해 쉴새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TV를 통해 탄핵소추안 대한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은 갑자기 탄성과 고성을 쏟아냈다. 나지막이 환호성을 내뱉은 이들도 있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을 앞두고 전원 퇴장하면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불성립되면서다.
동대구역에서 만난 윤모(33)씨는 "2017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 대구에 모든 관심이 집중됐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윤 대통령 탄핵안을 불성립시키면서 또 대구에 모든 관심이 쏠릴 것 같다"며 "손가락질을 받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하다. 민주당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분명 온 나라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큰 잘못이고, 탄핵으로 심판해서 대구의 오명도 씻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반면, 임모(여·60)씨는 "이제 '탄핵'이라는 말만 들어도 현기증이 난다. 탄핵이 불성립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박 대통령의 탄핵 정국을 겪은 대구시민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도 마음 한켠이 뒤숭숭했다"며 "다소 부족한 면이 있어도 대한민국을 이끌 리더를 우리 손으로 뽑았으니, 이젠 갈등을 봉합해 우리나라 국격을 높이고, 나라 살림을 잘 챙기는데 온 힘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대구의 중심상권 동성로 일대는 분위기가 살벌했다. 이 일대가 '아수라장'이 될 만큼 혼란스런 분위기가 연출됐다. 윤 대통령 탄핵 표결을 앞둔 오후 5시쯤 동성로 일대 곳곳은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다. 특히 CGV대구한일에서 동성로 28아트스퀘어까지 150m 거리가 '윤석열 퇴진 대구시민시국대회'에 참여한 직장인, 학생, 교수 등 시민들로 가득 메워졌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집단 퇴장으로 탄핵 표결이 불성립되자,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일부 집회 참가자들은 국민의힘 대구시당 앞에서 집회를 이어가고자, 오후 6시 30분쯤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시민 권모(57)씨는 "국민의 힘이 단체 퇴장한 건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며 국민 대표인데, 국민의 뜻을 저버렸다"며 "현재 대통령의 정신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그런 사람한테 나라를 맡긴다는 건 일촉즉발의 위기가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빨리 탄핵되는 게 옳다. 탄핵 촉구집회에는 계속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또 안모(62)씨는 "진영논리와 이념을 넘어서 국회의원 한명 한명이 헌법기관이다. 민주공화국으로서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이 위헌·위법한지에 대해 판단해 엄중한 한표를 행사했어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반면, 일부 시민들은 탄핵 가결여부를 떠나 최근 도심 곳곳에서 이뤄진 탄핵 집회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했다. 탄핵 부결로 야당이 갖게 될 '무소불위의 권력'을 막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배다정(여·32)씨는 "정당한 절차 없이 기습적으로 계엄을 선언한 만큼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견에는 공감하지만 꼭 사람들이 몰리는 동성로에서 인파가 붐비기 시작하는 시간대에 집회를 해야만 하느냐"며 "오늘 대구에서 인파가 많은 곳들에서 산발적으로 다수의 집회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비상계엄으로도 상당히 혼란스러운데 정치적 의도가 있는 집회가 너무 많아 혼란이 더 가중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김모(60)씨는 "아직 탄핵은 아닌 것 같다. 계엄령 선포가 위헌·위법이고 잘못된 것은 맞지만, 이런 식으로 탄핵이 이뤄지면 사회적 혼란이 심화될 수 밖에 없다"며 "질서 있는 퇴진이 이뤄져야만, 사회적 부작용을 상쇄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민주당도 책임이 있으며, 탄핵안이 가결됐다면 민주당 독주 체재로 국정이 운영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동현기자 leedh@yeongnam.com 박영민기자 ympark@yeongnam.com

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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