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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억 서울본부장 |
요즘 나라 걱정하는 국민들이 많다. 이렇게 정국이 혼란스러운데 나라가 이 정도로 지탱되고 있는 게 신기하다고들 한다. 정치는 국민을 나몰라라 하지만 그나마 국민이 나라 걱정을 하고 있어 가능한 일이다. 뒤바뀌어도 한참 뒤바뀌었다.
세계 6위 수출 대국(지난해 기준)이고 성공한 민주주의 국가로 자부해 왔던 대한민국에서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압도적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은 2년여 사이 공직자 29명을 탄핵했다. 대통령 탄핵에 이어 대통령권한 대행인 국무총리까지 탄핵했다. 부총리가 대통령권한 대행을 대행하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 현실화 됐다.현직 대통령 체포 영장이 발부됐고, 영장 집행을 놓고 진영 간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현직 대통령 체포 작전은 전 세계에 실시간 중계됐다.이 모든게 초유의 일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지금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서 살아가고 것이다.
이 같은 불행을 극복하고 되풀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국회의 권한 내려놓기가 필수적이다. 착한 권력은 없다. 한 번 잡은 권력은 내려놓기 힘들다. 권력을 잡는 순간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은 까맣게 잊어버린다. 권력의 끝은 늘 허망하다. 권력자에게 스스로 권력 행사 자제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근본적인 제도 정비가 필요한 이유다.불행속에 찾아왔지만 지금이 대한민국을 리셋(reset·재설정)할 적기다. 리셋은 개헌에서 출발해야 한다.
연초 언론사들이 국민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6명은 개헌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국회의장을 포함한 정치권도 온도 차는 있지만 대체로 개헌에는 공감하고 있다. 정상명 전 검찰총장은 지난달 30일 열린 재경대구경북시도민 송년행사에서 헌법 26조를 근거한 '개헌을 위한 1천만 서명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헌법 26조에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고 돼 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만들어진 현행 헌법 체제에서 8명의 대통령 중 5명이 탄핵·구속됐다. 몇% 차이로 이기든 당선 순간 왕이 되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불러온 재앙이다. 그 제왕적 대통령도 야당이 절대 다수 의석을 가질 경우는 속수무책이다. 그 결과는 이번과 같은 '황당한 비상계엄'을 촉발할 수도 있다. 1987체제는 소임을 다한 지 오래됐다. 그동안 국회에서 개헌 특위가 여러 차례 구성돼 다양한 개헌방안을 내놓기는 했지만 실행에 이르지는 못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전에는 개헌에 동의 했더라도, 권력을 잡는 순간 권한 축소에 동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헌은 내용과 시기가 중요하다. 우선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막을 권한 축소형 권력 구조 개헌이 필요하다. 국민 정서상 대통령제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은 것을 감안, 대통령 4년 중임제로 하되 대통령의 권한 축소와 함께 견제·감시 장치를 강화하는 방안이 담겨야 한다. 입법 폭주를 막는 방안도 헌법에 담아야 한다. 국회의원 특권 대폭 축소,국민소환제 도입 등이 포함돼야 한다. 국회에는 내각 불신임권, 대통령에게는 국회 해산권을 부여해 일방의 폭주를 막고 상호 견제와 협치가 가능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번 기회에 진영 간 갈등을 심화시키고,다수의 사표(死票) 발생으로 인한 대표성 논란을 빚고 있는 소선구제를 중선거구제로 바꿔야 한다.
개헌 논의 시기는 대통령 탄핵소추가 진행 중인 지금이 적기다. 탄핵이 인용되면 다음 대통령 선거때,기각되면 연내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을 마무리 하자.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서울본부장

김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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