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하인리히 법칙

  • 최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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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1-09  |  수정 2025-01-09 07:06  |  발행일 2025-01-09 제22면

[취재수첩] 하인리히 법칙
최시웅기자〈사회1팀〉

지난 6일 오후 6시20분. 대구 동구 신천동 한 아웃렛에 불이 났으니 대피하라는 대구 동구청발(發)안전 안내문자가 도착했다. 지목된 건물은 영남일보 사옥과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곳. 회사에서 부서 회의 도중 메시지를 받은 기자는 상황 파악을 위해 회의실을 뛰쳐 나왔다.

그때 동료들의 대화가 귓속에 들어왔다. "시간이 이상한데." 다시 확인해보니 화재 발생 시간은 '20시(오후 8시)'였다. 1시간 40분 뒤의 화재를 미리 경고한 것. 대피 장소도 도보 20분 거리에 있는 학교(신암동 소재)였다.

시간은 오타일 수 있고, 대피 장소는 멀 수도 있다고 여겼다. 확인이 필요했다. 소방당국은 통화 중이고, 메시지를 보낸 구청 상황실도 연결되지 않았다. 그 순간 동구청에서 메시지가 또 날아왔다. 모의훈련용 메시지를 잘못 보냈단 사과 메시지였다. 앞선 메시지가 도착한 지 8분 만이었다.

이 8분 사이 아웃렛에선 긴박한 상황이 벌어졌다. 아웃렛은 일단 시민들을 건물 밖으로 대피시켰다. 아웃렛 직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동구청 측과 통화하고 있었다. 오발송 탓에 영업에 피해를 봤다며 항의도 했다. 동구청 상황실도 난리가 났던 모양이다. 수백 통의 확인 및 민원 전화를 받았단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구청 직원 목소리는 진이 빠져 있었다.

짧은 해프닝으로 마무리된 건 천만다행이다. 지난해 12월부터 한국 사회는 굵직한 사건들로 지붕위를 걷는 상황이다. 연말연초 행복과 기대는 온데간데없다. 이런 와중에 아웃렛에 불이 났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1920년대 미국 한 보험사 관리자로 활동한 허버트 하인리히는 '하인리히 법칙'을 제시했다. 대형사고 1번 발생하기까지 29번의 경미한 사고, 300번의 징후가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 '1:29:300 법칙'이라고도 한다. 이 법칙의 중요성은 '예방'에 있다. 잠재적 위험을 사전 파악하고, 해당 요소의 확장가능성 등을 고려해 대비책을 세우자는 것. 관련된 이들 모두가 평소 관심을 두고, 사고 방지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번 해프닝은 긍정적 측면도 있다. 다소 오점은 남겼지만 모의훈련을 하던 동구청은 자체 재난 대응 시스템이 정상 작동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아웃렛은 오발송된 메시지에 적극 대응했다. 자체 소방안전 프로그램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아웃렛 입점 업체들도 대피에 동참하고, 시민들은 큰 동요 없이 몸을 피했다. 훈련은 제대로 했다.

이번 사고가 다음 대형사고를 부르는 경미한 징후가 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다시 한번 가다듬는 게 중요하다. 최시웅기자〈사회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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