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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의 신간 '양심'은 양심의 가치를 재조명하며 개인의 도덕적 책임과 사회적 공정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게티이미지 뱅크> |
"저는 우선 숨었습니다. 솔직히 다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놈의 얼어죽을 양심 때문에 결국 나서고 말았습니다."
2023년 서울대 졸업식 축사에서 두 개의 키워드가 화제로 떠올랐다. 바로 '공정'과 '양심'이다. 당시 축사에서는 키가 작은 이들에게는 더 높은 의자를 제공해야 세상이 공정하고 따뜻해진다며, 공평이 양심과 만나야 비로소 공정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로 인해 언젠가부터 일상적인 대화에서 사라져 버린 '양심'이 화두에 올랐고 '이 사람' 하면 떠올리는 단어가 됐다. 축사의 주인공은 인간과 생태를 탐구해 온 대한민국 대표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였다.
'최재천 교수'하면 함께 연상되는 많은 것들을 차치하고,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양심'이다. 호주제 폐지에 앞서 남성 최초로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한 일, 불법 포획돼 동물원에서 쇼를 하던 돌고래 '제돌이'와 몇몇 돌고래들을 제주도 바다로 돌려보낸 일 등 그간의 업적이 양심과 바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동물복제편'에서 언급된 것처럼 가던 길을 멈추고 지금의 생태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도 양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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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팀최마존 지음/더클래스 /208쪽/1만8천원 |
이러한 업적을 쌓아 온 최 교수와 '팀최마존'이 신간 '양심'을 출간했다. 이 책은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을 운영하는 '팀최마존'과 함께 기획하는 '호모심비우스 프로젝트'의 첫 시리즈로, 우리 사회에서 잊혀 가는 가치인 양심을 재조명하기 위해 세상에 나왔다. 인간과 사회의 공정함은 양심에서 출발한다는 메시지를 전해 '양심'이 갖는 시대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저자가 그간 탐구한 생태학적 인간관을 기반으로 사회적 양심이란 무엇인지, 철학적이고 실천적인 관점에서 서술한다.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은 지난 16일 기준 구독자 수 74만명을 기록하며 300여 개의 영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채널에 업로드된 영상들 중 '양심'이라는 키워드와 연관된 7편을 선별해 무삭제 버전의 내용을 글로 새롭게 풀어냈다. 방송에서는 차마 내보내지 못했던 '제돌이 야생 방류' '호주제 폐지' '복제 반려견의 윤리적 논쟁' 등을 주제로 한 이야기들을 상세히 다룬다. 특히 구어체·경어체로 서술돼 저자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생생한 느낌으로 만날 수 있다.
저자인 최 교수는 사회활동뿐만 아니라 교수 및 연구자로서도 활약했다. 기후 및 생물다양성 위기 상황에 중요한 분야가 된 생태학을 집중적으로 다룰 수 있는 '에코과학부'를 이화여대에 국내 최초로 설립했다. 이를 계기로 모교인 서울대를 떠나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또한 초대 국립생태원장과 코로나19 일상회복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대한민국 자연과학의 대중화를 넘어 일상에도 자연과학을 스며들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나아가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공생하는 '호모 심비우스'라는 학명을 만들기도 했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에서도 양심의 존재가 언급됐다. 이를 두고 저자는 신간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내 안에 있는 무엇', 바로 양심이다. 이를 대체할 단어는 없고 그 용도가 폐기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며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양심이 사라져가는 사회는 피폐해진다"고 전했다. 결국 이 책은 개인의 덕목인 양심을 넘어서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법을 제시한다. 앞서 언급한 축사 마지막에 그가 덧붙였듯이 말이다. "부디 혼자만 잘 살지 마세요. 모두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이끌어주십시오."
정수민기자 jsmean@yeongnam.com

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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