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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작가의 신작 '나직이 불러보는 이름들'은 저자의 그리운 인연들을 총망라한 글이자, 전 생애에 걸친 문학적 발자취를 집대성한 산문집이다. <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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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지음/문학동네/412쪽/1만8천500원 |
니체는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 말했고, 예술가들은 소멸의 아름다움을 찬미해 왔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지금은 떠나간 그리운 이들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와 가까웠던 사람들은 인생의 어느 순간 왈칵 그리워지기에.
이처럼 망각의 소중함과 소멸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도, 그립고도 살뜰한 이들의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작가가 있다.
시인이자 문학 연구가, 가요 연구가로 살아온 경북 김천 출신 이동순 작가의 신작 산문집 '나직이 불러보는 이름들'이 출간됐다. 저자는 백석, 홍범도, 고려인 강제 이주사, 향토 문화사, 근대 가요사에 이르기까지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방위적인 집필로 문학인의 길을 걸어왔다. 이 책은 저자의 그리움을 바탕으로 전 생애에 걸친 문학적 발자취를 집대성한 산문집이다. 문학으로 만난 지난 반세기의 인연들을 총망라한 글이자, 지난 세월 만나온 사물, 작품, 지명, 노래 등의 고유명사들을 하나씩 되새기는 애틋한 복원 작업과도 같다.
저자는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당선된 이후 '미스 사이공' 등 스무 권이 넘는 시집을 출간해 한국 시단에 선명한 족적을 남겨왔다. 특히 분단 이후 최초로 백석의 시전집을 발간해 시인을 민족문학사에 복원시키고 백석 연구의 길을 연 장본인이다. 뿐만 아니라 근대 가요에도 관심을 가지며 잊힌 가수와 노래들을 발굴해 이를 어엿한 문화사로 자리매김하는 데에 큰 공헌을 해왔다. 이렇듯 저자의 개인사와 역사가 함께 얽혀 있어 또다른 의미와 여흥을 제공한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돼 저자의 긴 생애를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풀어낸다.
먼저 독립투사였던 이명균 조부의 이야기로 막을 연다. 저자의 유소년기와 원가족에 관한 일화들로 이뤄진 1부는 토막난 기억들을 되살려 산문으로 풀어냈다. 특히 끝내 순국한 지주 자본가인 조부의 삶은 훗날 저자의 삶과 창작의 방향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어 예술이라는 새로운 세상과 조우하게 된 저자의 10대 시절을 그려낸 2부가 시작된다. 1960년대 대구·경북 지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학창 시절의 일화는 6·25 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은 격동의 시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검은색 완행열차 '미카', 해충 구제(驅除), 방성(榜聲)소리, 눈병 고치는 할머니 등 지금은 완전히 자취를 감춘 그 시절의 풍물과 풍속이 소개된다.
3부는 시인이 되기를 결심한 순간부터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단에 첫발을 내디디기까지의 젊은 날을 다룬다. 1970년대 삼엄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만의 가치관을 다져나가는 과정을 내보인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교사 일에서 맺은 인연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며 그 마음들을 하나하나 되새긴다.
마지막 4부에서는 교수로 임용된 이후 이육사 시인의 고향인 안동에서 보낸 나날을 비롯해 문단의 작가들과 깊은 인연을 맺은 일, 정년 퇴임 후 현재까지의 인생을 담아냈다.
저자는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경북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1989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분에도 당선됐다. 저서로는 시집 '미스 사이공' '철조망 조국', 민족서사시 '홍범도'(전5부작 10권), 평론집 '민족시의 정신사' '시정신을 찾아서', 산문집 '한국 근대가수 열전' '민족의 장군 홍범도' 등을 펴냈다. 또한 '백석시전집' '권환시전집' 등을 엮었다.
정수민기자 jsmean@yeongnam.com

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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