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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
"오늘 같이 쌀쌀한 날씨에는 순두부백반이 좋겠다고 하네. 맛집 예약했어."
문제는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었다. 한창 차가 밀리는 퇴근시간임에도 거리는 대낮처럼 한산하여 우리는 무려 40분이나 일찍 식당에 도착했다. 한겨울인데다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밖에서 기다리기가 거북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친구가 AI에게 물었다.
"식당 주인한테 의논하여 양해를 구하십시오."
벨을 눌러 주인을 불렀더니 예약시간이 되기 전에는 손님을 받을 수 없다고 난색을 표한다. 날씨가 추워 식당에 들어가서 기다릴수는 없겠느냐고 하니 지금은 자기들도 손님 받을 준비시간이라면서 약속시간을 지켜달라고 한다. 옥신각신하던 끝에 결국 내가 화가 나서 식당 약속을 취소하고 말았다. 우리는 다른 집을 찾기 시작했다. 운이 좋았다. 바로 길 건너편에 순두부백반집이 있었다. 따뜻한 불빛이 추위에 떤 우리를 반겼다.
밥을 먹으면서 이번에는 내가 재미삼아 AI에게 말을 걸었다. 먼저 오늘의 잘못이 누구에게 있느냐고 물었다.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은 우리 쪽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까 그 순두부집에서 우리를 불러들여 실내에서 따뜻하게 기다리게 해 주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에는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 음식점 주인의 생활권을 침해한다는 것이었다. 이쪽에서 시간을 어긴 만큼 모든 책임은 이쪽에서 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간간이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의 AI에게 전적으로 동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바로 그때였다. 길 건너편에서 아까 그 음식점 여자가 쫓아오는 것이 보였다. 양팔을 거칠게 흔들며 무어라 욕설까지 하며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여자의 폭풍과도 같은 욕설이 쏟아졌다. 상도의(商道義)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자기네 식당 약속을 파기하면서까지 왜 하필 같은 종류의 음식을, 바로 길 건너편에서 먹고 있느냐고 따졌다. 안 그래도 불경기라 장사도 안 되는 판에 부아 지를 일 있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한바탕 난리를 치른 후 우리는 차에 올랐다. 겨울밤이라 냉기도 심했고, 배는 더 고팠다. 친구가 시동을 걸었다.
"일이 왜 이렇게 꼬인 거야? AI에게 물어볼까?"
내가 대답했다.
"그만 해."
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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