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르포] “어떻게 일궈놓은 가게인데…” 반월당 지하상가 상인 ‘하소연’

  • 이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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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2-27  |  수정 2025-03-12 11:49  |  발행일 2025-02-28 제2면
[Y르포] “어떻게 일궈놓은 가게인데…” 반월당 지하상가 상인 ‘하소연’

3월 1일자로 대구 중구 반월당 지하상가 권리가 대구시로 위임되면서 상인과 수분양자 간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이남영기자 lny0104@yeongnam.com

[Y르포] “어떻게 일궈놓은 가게인데…” 반월당 지하상가 상인 ‘하소연’

3월 1일자로 대구 중구 반월당 지하상가 권리가 대구시로 위임되는 가운데, 반월당 지하쇼핑 영세상인 생존권 비상대책위원회는 '합의못한 영세상인, 코로나대출 대구시가 책임져라' , '영세상인 쫓아내는 대구시는 각성하라' 등의 현수막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남영기자 lny0104@yeongnam.com

“날강도가 따로 없어. 여지껏 여기서만 영업했는데 우리 같은 상인들은 어떡하라고…"

27일 오후 1시쯤 대구 중구 반월당 지하상가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던 상인 A씨는 취재진을 보자 한숨을 내 쉬었다. 이 상인은 1년 전 쯤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가게가 대구시로 넘어간다는 소식을 들으며 하루도 노심초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가게 운영을 하던 중 지난해 12월 대구시 지하도상가 관리 조례가 제정됐다. 임대인인 수분양자는 A씨에게 연락해 기존 장소에서 계속 장사를 하고 싶으면 수억원 이상의 금액을 달라고 요구했다.

A씨가 요구받은 금액은 7억원 상당. A씨는 고민 끝에 수분양자가 요구하는 금액을 부담하고 대구시와 수의계약을 했다.

A씨는 “이곳에서 장사한 지가 벌써 십수 년이 넘었다. 그간 자리잡은 기반이 있는데 어떻게 가게를 쉽게 이전하겠느냐"며 “'울며 겨자먹기'로 기존의 자리에서 장사하기로 수분양자와 합의한 상인들도 있겠지만 돈 없는 상인들은 권리금도 못 받고 쫒겨날 판이다. 이 상황을 보면 대구시를 원망해야 할 지, 수분양자를 원망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하소연 했다.

실제, 이날 영남일보 취재진이 반월당 지하상가를 방문해 상인들에게 확인해 본 결과, 상당수는 수분양자와 합의 과정에서 마찰을 빚었다. 합의하지 못한 상인은 피해보상청구 소송을 준비하고, 합의가 되더라도 평수를 줄여 가게 운영을 결정하는 등 사례는 다양했다.

이 탓에 반월당 지하상가 곳곳에는 '점포 정리' ,'파격 세일'을 붙여놓은 가게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고, 상인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반월당 지하쇼핑 영세상인 생존권 비상대책위원회는 '합의 못한 영세상인, 코로나 대출 대구시가 책임져라', '영세상인 쫓아내는 대구시는 각성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비대위는 수분양자들이 상인들에게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유재산법에 따르면 공유재산이 된 지하상가 연간 임대료(사용료) 산정 방법은 호실별 재산 평정가격에 5.0% 사용료율을 곱한 값이다. 하지만 대구시가 지난해 정한 조례에는 분양권 취득 시기에 따라 연간 임대료 사용료율을 2.0~3.5%로 나눠 책정하고 있다.

가령, 연간 임대료가 1억원이라면 법에 따라서는 500만원의 임대료를 내야하지만, 분양권 취득 시기가 3년 이내라면 시 조례에 따라 사용료율 2.0%를 적용해 연간 200만 원의 임대료만 대구시에 내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수분양자들이 상인들에게 합의를 명목으로 수억원의 금전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게 비대위의 주장이다. 현재 반월당 지하상가의 월세는 100~300만원대에 책정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수분양자들이 대구시와의 수의계약을 주선하는 조건으로 상인들에게 최소 1억원부터 많게는 7~8억원까지 요구하고 있다는 것. 상인들 입장에선 지난해 만들어진 대구시 조례상 수분양자에게 우선권을 줬기 때문에 수분양자의 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다는 하소연이다.

대구시 조례 부칙에 따르면 '점포에서 실제로 영업을 하고 있는 자와 종전 수분양자가 서로 다른 경우에는 두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실제 영업하기로 결정 한 자. 다만, 일정기간 내 두 당사자 간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종전 수분양자에게 우선권을 부여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탓에 임차 상인들 입장에선 대구시와 수의계약을 맺고 싶어도 수분양자와의 합의가 우선돼야 영업이 가능하다.

만약, 수분양자와 수의계약이 되지 않으면 일반경쟁입찰로 진행돼야 하기 때문에 상인 입장에선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수분양자들은 이 같은 상인들의 발언에 근거없는 소리라며 선을 그었다. 대구시에 따르면 반월당 지하상가는 총 403개로, 수의계약을 완료한 가게는 399개다. 4개 점포를 제외한 나머지 가게가 수의계약을 맺은 만큼, 오히려 일부 상인들이 수분양자에게 적은 금액의 합의를 제안하면서 마찰을 빚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수분양자는 “대부분의 수분양자와 상인은 합의를 했다. 수분양자 입장에선 수억원 주고 산 점포를 하루 아침에 날린 상황이지만, 최대한 상인의 편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오히려 상인들이 택도 않는 가격으로 수분양자와 합의하려다 수분양자와 마찰을 빚은 경우도 있었다. 상인 입장에서는 매달 월세를 받았으니 손해가 없을 거라고 하지만 분양 받은 지 2~3년 된 수분양자들은 수억원을 투자한 것에 비해 오히려 손해가 막심한 상황"이라고 하소연 했다.

한편으론 이 같은 상인과 수분양자 간 갈등을 두고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는 상인도 있었다.

십수년간 신발가게를 운영해 온 한 상인은 “20여년 남짓 대구를 지킨 반월당 지하상가는 대구 중심 상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이런 상징성 있는 상권이 상인과 수분양자의 마찰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어찌보면 상인과 수분양자 모두 피해를 보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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