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두 황제의 묘우' 팔공산 이제묘 사라지고 현판은 청주 농가창고에…

  • 박태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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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3-19  |  수정 2025-03-19 08:44  |  발행일 2025-03-19 제24면
고종·순종 위패 봉안한 사당

1926년 최상길이 상주서 설치

1951년 대구로 옮겨 70년 제향

2~3년전 철거 후 잔해만 남아

[동네뉴스] 두 황제의 묘우 팔공산 이제묘 사라지고 현판은 청주 농가창고에…
1996년 발간된 '대구의 누정록'에서 발췌한 이제묘(왼쪽)와 지난달 22일 방문한 대구 동구 이제묘 현장, 건물은 철거되고 대나무와 잡풀들만 무성하다. 작은 사진은 충북 청주의 김채곤씨가 시골집 농가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이제묘 현판.
팔공산에 있던 이제묘(二帝廟)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지난 2월22일 찾아간 대구시 동구 평광동 1219번지에는 건물을 철거한 잔해가 쌓인 듯한 작은 둔덕이 여기저기 솟아 있고 그 위에 마른 잡풀들만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2∼3년 전쯤 외지인에게 집의 소유권이 넘어간 후 굴착기를 이용해 건물을 철거했다고 한다. 이제묘는 대한제국 고종·순종 두 황제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했던 묘우다. 2019년 6월24일자 영남일보 기사에 따르면 이제묘는 1926년 순종이 승하하자 유학자 최상길·김종희가 유림 10여 명과 함께 상주에 망곡단 (望哭壇)·광희묘(光熙廟)를 설치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후 1951년 대구시 동구 평광동 팔공산 자락으로 이제묘를 만들어 옮긴 뒤, 매년 봄·가을 두 차례 임금을 기리는 제사를 지냈다.

[동네뉴스] 두 황제의 묘우 팔공산 이제묘 사라지고 현판은 청주 농가창고에…
1996년 발간된 '대구의 누정록'에서 발췌한 이제묘(왼쪽)와 지난달 22일 방문한 대구 동구 이제묘 현장, 건물은 철거되고 대나무와 잡풀들만 무성하다.
[동네뉴스] 두 황제의 묘우 팔공산 이제묘 사라지고 현판은 청주 농가창고에…
충북 청주의 김채곤씨가 시골집 농가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이제묘 현판.
하지만 1997년 최상길의 후손이 부도로 토지소유권을 잃게 되면서 이제묘는 20년 넘게 방치되다시피 했다. 특히 2018년 6월에는 당시 소유주가 동구청에 철거·멸실 신고까지 마치면서 이제묘는 존폐 위기에 놓이게 됐다. 이에 복원추진위와 대한황실진흥원 등은 2019년 5월 이제묘의 현판을 경남 함양군 대한황실진흥원 교육연수원으로 옮겼다.

그럼 1951년 당시 상주에 있던 이제묘를 대구로 옮긴 이유는 무엇일까?

2019년 5월15일자 서부 경남 신문에 대한황실진흥원 교육연수원 하도훈 원장이 인터뷰한 내용이 있다. 하 원장은 "이제묘는 경북 상주에서 시작했으나 '왜 제사를 지내냐, 독립운동하는 것 아니냐'며 일제에 20여 차례 붙들려 고문당하는 등 탄압을 견디다 못한 후손들이 1942년 대구 팔공산으로 옮겼고, 1951년 대구시 동구 평광동으로 옮겨와 70여 년간 매년 제향을 지내왔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이제묘를 대구로 모셔오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과 직접적인 원인이 있다. 대구를 독립운동의 메카로 본 것이다. 대한제국 독립운동과 유림들의 구심적 역할을 위해 이제묘는 꼭 필요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국채보상운동이 이제묘를 대구로 오게끔 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럼 사당은 철거되었지만 '二帝廟(이제묘)' '崇義門(숭의문)'이란 현판은 대한황실진흥원 교육연수원에 그대로 있을까? 수소문해 본 결과 그곳에 있던 현판도 옛 건물주와 관련된 사람들이 다시 회수하여 가져갔다고 했다. 어렵게 조사하여 찾아보니 충북 청주에 사는 김채곤씨가 시골집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지금이라도 대구에서 이제묘 복원이나 현판을 문화재로 지정하고자 한다면 자체 협의 후 적극적으로 협조할 의사가 있다"면서 2개의 현판사진을 보내왔다. 두 황제의 제사를 지낸 70여 년의 세월과 독립운동 하듯이 몰려들었던 유림의 의지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퇴색된 것처럼 현판은 검은 바탕색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글·사진=박태칠 시민기자palgongsan72@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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