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7일 리안갤러리 대구를 찾은 이진우 작가가 자신의 설치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임훈기자hoony@yeongnam.com>
“예술로서 우리의 세상이 다시 살아났으면 합니다."
숯과 종이로 구성된 대지 위에서 생명의 순환을 엿볼 수 있는 전시가 대구에서 열려 눈길을 끈다. 리안갤러리 대구는 오는 4월22일까지 올해 첫 기획으로 이진우 작가의 개인전 '4ème·물 Quatrième·eau(네 번째·물)'을 개최한다.
'숯과 한지의 작가'로 불리는 이진우는 그동안 한지와 숯, 먹 등 한국적인 재료를 활용해 독창적인 조형성과 행위성을 구축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드로잉과 설치 작품을 포함한 20여 점의 작업을 통해 '물과 생명의 흐름'을 보여준다.
물과 존재의 순환에 대한 탐구는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대주제다. 특히 전시장 바닥에 자리한 설치 작품은 '물과 생명의 순환'을 집약했다. 숯으로 만든 작품 위에는 잔디 씨앗을 품은 '시드볼'이 뿌려져 있고, 곳곳에서 자라나고 소멸하는 잔디의 잎을 볼 수 있다. 식물의 생장을 위해 물 공급이 필수인 해당 작품은 연약한 생명에 대한 작가의 연민을 품고 있다.

이진우 작<임훈기자hoony@yeongnam.com>

이진우 작가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리안갤러리 대구 전시장 전경.<임훈기자hoony@yeongnam.com>

물과 생명의 흐름을 보여주는 이진우 작가의 설치작품. <임훈기자hoony@yeongnam.com>
숯을 활용한 평면작품에서는 불과 물을 매개로 변화하는 존재의 본질을 가늠할 수 있다. 작업 과정은 고단하다. 작품 가장 아래에 천을 깔고 숯가루를 개서 바른다. 그 위에 종이를 붙인 후 와이어 브러쉬로 긁어내는 행위를 반복한다. 마지막에는 종이를 덮는다. 이 작가는 “나는 먹(숯)을 놓고 종이를 덮는 행위를 한다. 많게는 50겹의 한지를 붙인 적도 있다. 이는 시대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었다"라고 말했다.
이 작가가 숯을 작품에 활용한 지는 어언 30년이 넘었다. 1980년대 프랑스 유학 시절 은사로부터 “(작가로서)너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것을 계기로 숯을 사용하게 됐다. 이 작가에게 숯은 서예의 '먹'과도 같다. 유년 시절, 천자문을 배우기 위해 서예에 입문했던 이 작가에게 숯은 또다른 먹의 형태로 다가온 것이다. 숯 작업에는 일종의 '시대 저항' 의식도 담겨 있다. 프랑스 유학 중 유럽의 전위적 예술에 자극을 받은 이 작가는 종이로 그림을 덮어버리는 역발상을 통해 나름의 저항을 시작한 것이다.
1959년 서울 태생인 이진우 작가는 1983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8대학과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조형미술학과 미술 재료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파리를 기반으로 활발한 작업을 펼치고 있다.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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