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少珍의 미니 에세이] 나도 꽃

  • 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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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3-21  |  수정 2025-03-21 08:32  |  발행일 2025-03-21 제16면
꽃망울 틔운 매화 보러 양산행

통도사 경내 수령 350년 홍매

율사의 호 따 '자장매'로 불려

소나무 밑 꽃 한송이도 봄마중
[少珍의 미니 에세이] 나도 꽃
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설이 지나자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한다. 발 달린 짐승이 겨울이라고 언제까지 집 안에만 갇혀 지내야 한단 말인가. 눈만 뜨면 TV는 올림픽 중계하듯 봄소식을 전하는데, 오늘은 문득, 뉴스 끄트머리가 수상하다. 양산 통도사에 매화가 망울을 맺었다나 어쨌다나.

급조된 4명이 달려간 통도사는 이제 겨우 겨울잠에서 깨어나려 하고 있었다. 주중이라 방문객마저 뜸한 한적한 경내에는 아름드리 큰 나무들끼리 두런두런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절을 낀 영축산이 깊기는 한 모양이었다. 겨울 가뭄으로 아직 땅이 메마른데도 양지쪽 개울에는 눈 녹은 물이 산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뭇가지 사이로는 새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올랐다. 아직 싸한 겨울 날씨 중에도 어딘가에서는 흙이 들썩거리고, 개구리가 기지개를 켜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천천히 경내를 어슬렁거렸다. 사찰이 좋은 것 중 하나는 뒷짐 지고 한갓지게 어슬렁거릴 수 있음일 것이다. 도심에서 벗어나 내 집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려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게으름을 피워도 늑장을 부려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스님을 만나 잠시 합장을 한다. 다섯 손가락과 손바닥을 가지런히 붙여야 하는데 거두어들이는 나의 손바닥이 뻘쭘하게 벌어져 있다. 생각이 산만하고 마음이 흩어져 있음이리라. 스님의 합장은 가지런하다. 허리마저도 반듯하다. 든든하고 위안이 된다.

매화 앞에 다다랐다. 대가람 경내의 350여 년이 넘은 홍매화는 1650년경 사찰을 창건한 자장율사의 큰 뜻을 기리기 위해 심은 나무로 알려져 있다. 율사의 호를 따서 '자장매'라고 부른다. 예상했던 대로 이른 봄이라 아직 망울만 맺혀 있다. 예년에 비해 올 겨울이 모질었던 탓일까. 성급한 사진작가들이 보채듯 카메라를 들이밀어도 매화는 꿈적 않는다. 시간은 매화 편이다.

아쉬운 대로 사진 몇 장 찍고 돌아서려는데, 외진 곳 소나무 밑에서 손짓 같은 것이 느껴진다. 약속이나 한 듯 우리는 그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세상에나! 소나무 밑 낙엽을 이불 삼아 꽃 한 송이가 앙증맞게 피어있는 것이 아닌가! '나도 꽃!'이라고 손을 드는 모양새다. 너무 작아 만질 수도 없을 지경이다. 눈만 가져가 들여다볼 뿐이다.

이 작은 꽃은 어떤 경로로 여기까지 왔을까. 바람에 묻어왔을까. 비를 타고 왔을까. 무엇을 찾아왔을까.

몸을 일으켜 조금 더 꽃에 다가간다. 오늘 우리의 마음을 건드린 꽃이다. 그것은 오직 저 혼자 스스로 가만히 피어있다. 겨울을 관통하고 봄을 마중하며 수줍게 피어있다.

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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