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막을 수 없는 재난의 탄생

  • 오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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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4-03  |  수정 2025-04-03 07:09  |  발행일 2025-04-03 제22면
[취재수첩] 막을 수 없는 재난의 탄생
오주석기자 (사회3팀)
경북 대형 산불 현장은 기존 자연 재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진화 헬기가 수시로 날아다니고, 수천 명의 진화 인력이 투입됐지만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악화하기만 했다. 낮 동안 잠잠하던 날씨는 해가 떨어지는 무렵 급변하더니 강한 바람을 타고 주변을 삼켜나갔다.

꺼진 줄만 알았던 불은 밤이 되면 되살아나 수많은 산능선을 다시 뒤덮었다. 산불은 그렇게 의성에서 안동, 청송, 영양, 영덕으로 퍼져나갔다. 수시로 휴대폰에 울리는 대피 문자는 상황의 심각성을 한층 고조시켰다. 밤만 되면 어김없이 되살아나는 '좀비 산불'의 위엄이었다.

이번 재난은 경북도를 출입하면서 경험한 2023년 7월 집중 호우와는 사뭇 다르다. 모두 산에서 비롯됐지만 이를 취재하는 기자의 입장에선 산사태는 순식간에 벌어진 과거형 재난이고 산불은 현재 진행형이다. 산이 타들어 가는 것을 현장에서 목격하고 바람에 날린 매캐한 연기를 수시로 맡는다는 점에서 체감 난도가 더욱 높았던 것 같다. 수개월간 지속됐다던 캐나다 산불이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한 번 번진 대형 산불은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막기 어렵다는 걸 이번 취재를 통해 경험했다. 지난달 27일 저녁에 단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주불은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을 것이다. 최신식 장비가 투입되고 인공지능이 산업 전반에 확산한 오늘날에도 자연 재난은 막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우리와 같은 선진국인 캐나다조차 자력으로 막지는 못했으니 말이다. 자연 재난은 국력과 상관없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고 인간의 노력만으론 막기 어렵다는 걸 방증한다. 지자체와 기관, 전문가들이 조만간 내놓을 대비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상황은 곧 잠잠해지고 한동안 평안한 일상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재난은 불현듯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때 우리가 얼마나 잘 대처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다음 재난 때는 무리한 진화보단 인명에 더욱 초점이 맞춰지길 바란다. 이재민 발생 때마다 반복되는 체육관 대피소는 언제쯤 뉴스 화면에서 사라질까. 급속하게 악화하는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칠까. 헝가리 내무장관은 2019년 다뉴브강에 침몰한 유람선 선체에 잠수 요원이 들어가 시신을 수색하겠다는 한국의 요청을 거부하며 "우리는 영웅을 만들어내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한다. 무리한 작전으로 잠수 요원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상황은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번 의성 산불 현장에선 강원도에서 파견 온 헬기 조종사 한 분이 숨졌다.

오주석기자〈사회3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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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

영남일보 오주석 기자입니다. 경북경찰청과 경북도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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