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공원 핑크 아그배나무
달성공원과 서문시장, 기억의 풍경 속으로
대구 도심 한가운데, 마치 시간의 오솔길처럼 조용히 펼쳐진 달성공원. 그 입구를 지나 능선 따라 걷다 보면, 뜻밖의 한 장면에 마음이 멈춘다. 연분홍빛 꽃잎이 햇살을 머금은 채 바람에 살랑이는, 그 한 그루 아그배나무.화려하면서도 담백하고, 강하지 않지만 오래도록 남는 잔향 같은 꽃나무이다.
겨울을 버틴 가지 끝에서 수줍게 피어난 꽃은 마치 오래된 연애편지처럼 서툴지만 진심이고, 바람결에 흔들리며도 뿌리는 굳건하다.사람과 나무가 닮았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풍경의 일부가 된다.아그배나무는 장미과 사과나무속에 속한 작은키나무로, 분홍빛 봉오리를 터뜨리며 흰 꽃으로 피어난다.
그 꽃은 누군가에게는 유년의 봄이자,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이별의 풍경일 것이다. 달성공원의 아그배나무는 단 하나. 그 단 하나의 존재가 계절의 문을 열고 닫으며 수많은 이의 기억을 비춘다.
달성공원은 단순한 도심의 녹지가 아니다. 삼한시대 토성 '달불성'에서 출발해 경상감영의 시절을 거쳐, 일제강점기의 기억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살아 있는 역사'다.토성 능선을 따라 걷는 길, 음각으로 새겨진 이상화 시비 앞에서 잠시 멈춘 발걸음, 동물원 철창 너머의 순한 눈빛들까지. 여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복잡하지만 따뜻한 장소다.
공원 어귀를 벗어나 남쪽으로 250미터, 골목길의 질감이 조금씩 바뀌는가 싶으면 어느새 서문시장이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굽이굽이 이어진 이 시장에는, 도시의 배고픔과 그리움이 함께 뒤섞여 있다.
매콤한 콩나물 오뎅 국물 한 모금에 속이 풀리고, 나뭇잎처럼 빚은 손만두위에 아삭한 콩나물을 올려 먹으면 한 입에 피식 웃음이 번진다.바삭한 껍질에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지는 돼지껍데기, 60년 전통의 미림돈까스 한 조각에는 대구의 시간이 스며 있다.
북성로 골목을 따라가다 우연히 만나는 미싱골목, 노포(老鋪) 의 구수한 냄새, 그리고 청춘들이 다시 색칠한 수창청춘맨숀의 예술적 낙서들까지.도시의 심장부, 달성공원과 서문시장은 어쩌면 한 편의 산문시일지도 모른다. 꽃 한 송이, 국물 한 모금, 오래된 돌비석 하나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그런 시.
사람이 꽃을 좋아하는 건, 꽃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안에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한 계절을 온몸으로 피워낸 존재 앞에서 인간은 감정을 되찾는다.달성공원의 아그배나무는 그래서 아름답고, 서문시장의 한 그릇 음식은 그래서 위로가 된다.
대구의 봄은, 그렇게 맛보고 걷고 기억하는 것이다.

한유정
까마기자 한유정기자입니다.영상 뉴스를 주로 제작합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