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가 우리나라 시간으로 26일 오후 5시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렸다. 장례 미사에 운집한 20만명이 넘는 신도들은 영면한 교황을 눈물로 이별했다. 교황의 장례는 그가 한평생 살아온 모습 그대로였다.
산타 마르타의 집 예배당에서 공개된 그의 관은 역대 교황들의 관이 허리높이의 관대에 올라간 것과 달리 바닥과 가까운 낮은 곳에 놓여 있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을 보살폈던 그의 삶처럼 마지막 자리도 다르지 않았다. 관도 마찬가지다. 역대 교황의 시신이 사이프러스관·아연관·참나무관에 삼중으로 밀봉됐지만 그는 아연으로 내부만 덧댄 목관을 선택했다.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치되는 관례를 깨뜨리고 로마 시내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을 영면의 안식처로 삼았다. 생전 그가 즐겨 찾던 곳이었다. 유언장을 통해 "특별한 장식 없는 무덤에 묻어 달라"고 남겨 묘비에는 '프란치스쿠스'라는 자신의 라틴어 이름만이 새겨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이라기보다 처음 사제 서품을 받은 '신부'와 같은 삶을 살았다.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단단한 뿌리가 되어 주고, 불평등으로부터 막아주는 방패였다. 가난한 사람이거나 소외된 사람을 도움을 주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하는 이웃으로 보았다. 동성애자에게도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라며 감쌌다. 교황이 받아야 할 연봉도 청빈서약을 함으로써 한 푼도 받지 않았다. 특히 지도자들에게 "진정한 권력은 섬김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자신을 높이고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하기를 갈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그가 더 그리워질 것이다.
산타 마르타의 집 예배당에서 공개된 그의 관은 역대 교황들의 관이 허리높이의 관대에 올라간 것과 달리 바닥과 가까운 낮은 곳에 놓여 있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을 보살폈던 그의 삶처럼 마지막 자리도 다르지 않았다. 관도 마찬가지다. 역대 교황의 시신이 사이프러스관·아연관·참나무관에 삼중으로 밀봉됐지만 그는 아연으로 내부만 덧댄 목관을 선택했다.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치되는 관례를 깨뜨리고 로마 시내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을 영면의 안식처로 삼았다. 생전 그가 즐겨 찾던 곳이었다. 유언장을 통해 "특별한 장식 없는 무덤에 묻어 달라"고 남겨 묘비에는 '프란치스쿠스'라는 자신의 라틴어 이름만이 새겨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이라기보다 처음 사제 서품을 받은 '신부'와 같은 삶을 살았다.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단단한 뿌리가 되어 주고, 불평등으로부터 막아주는 방패였다. 가난한 사람이거나 소외된 사람을 도움을 주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하는 이웃으로 보았다. 동성애자에게도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라며 감쌌다. 교황이 받아야 할 연봉도 청빈서약을 함으로써 한 푼도 받지 않았다. 특히 지도자들에게 "진정한 권력은 섬김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자신을 높이고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하기를 갈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그가 더 그리워질 것이다.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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