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珍의 미니 에세이] 아웃 포카싱](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505/news-p.v1.20250511.66b22c94d7fe4c4c98a2d44a8aaad736_P1.png)
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이번 대통령 선거는 여간 어렵지 않다. 전임 대통령 탄핵이라는 전대미문의 정치 지형에서 찍고 싶은 후보자가 없는 것이 곤혹스럽다. 합동 토론도 열심히 살펴보고 신문 뉴스도 꼼꼼히 챙겨 보지만 마음이 가는 후보자가 없다.
취향이 그렇게 까다로우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대한민국 백성(百姓)의 중간쯤 되는 지극히 평범한 서민으로, 그동안 선거 때마다 긍지를 가지고 투표장에 가서 누군가를 정성껏 찍었었다. 확신에 찼던 것은 아니지만 찍을 때는 늘 명분도 있었고, 나름 기분도 괜찮았었다. 그런데 이번은 다르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찍고 싶은 사람이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기권을 할까.
투표 일이 가까워지자 묘안이 떠올랐다. '아웃 포커싱' 기법을 도입해 보는 것이다. 아웃 포커싱이란 사진 용어로 'Out of Focus'를 편의상 줄여 부르는 말이다. 초점을 잡은 피사체를 강조하기 위해 배경을 흐릿하게 처리하는 방법으로 피사체만 부각시키고 주변의 자질구레한 것들은 보이지 않게 하는 기법이다.
나는 후보자들에게서 그들을 둘러싼 배경들을 제거해 보기로 했다. 외모, 학벌, 나이, 정치 환경 등이다. 엄격히 말해 본인과 직접적인 관계가 적은 것들이다. 나는 우선 외모를 보지 않기로 했다. 키가 작건 크건, 얼굴이 잘 생겼건 못 생겼건 그것은 본인 의사에 반(反)할뿐 아니라 나 개인의 취향이 가장 많이 작용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나이, 학력, 속해 있는 당을 비롯한 정치환경 순으로 하나씩 지워나갔다. 비로소 사람이 보였다. 잡다한 배경에 가려 있던 피사체가 선명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대선 앞 마음 가는 후보 없지만
인물만 집중하니 사람이 보여
토론회 본 후엔 다시 제자리
어차피 대선은 초인선발 아냐
감시 필요한 공직자 뽑는 일
문제는 합동토론에서 나타났다. 통과의례처럼 안보, 경제, 복지를 건드리다가 후보 간의 자질검증으로 들어가자 어렵게 지운 각자의 배경들이 고스란히 살아나고 말았다. 상대를 향한 비방과 막말에 몰두하다보니 자신들의 출생, 교육, 가치관들이 여과없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동안 표를 의식해 눌러왔던 야망들이 호시탐탐 활성화할 기회를 노리다가 상대방의 약점을 낚아챈 순간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재미있는 것은 출신 배경이었다. 금수저와 흙수저가 확연히 갈라서서 루비콘 강을 사이에 두고 삿대질을 해대니 공들여 작업한 나의 아웃 포커싱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의 현재가 과거의 그를 편집한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제 나는 차선(次善) 혹은 차악(次惡)을 선택하기로 했다. 어쩌면 나는 투표장 한 번 가는 것으로 산신령과 같은 전지전능한 대통령을 기대했던 것은 아닐까. 대통령은 신도 아니고 초인도 아닐 것이었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인물 중에서 아주 조금 우리보다 깨어있는 인물이면 충분했다. 하늘을 찌르는 카리스마도 지도자라는 발광체도 나 스스로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했다. 대통령(president)이라는 명칭도 회의를 주재한다는 '프리자이드(preside)'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지 않던가. 어느 후보자의 말처럼 대통령 또한 국민의 감시가 많이 필요한 고위 공무원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오늘도 메스컴에서는 선거 뉴스로 뜨겁다. 드라마보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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