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정치 리더십'의 조건

  •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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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5-29  |  수정 2025-05-29 07:08  |  발행일 2025-05-29 제22면
'새로운 거래' 합의 루스벨트

미래·정보·기술 읽은 피터 틸

확증편향은 도량발호 위험

국론 통합하고 경제 고양할

'통섭형 리더십' 찾아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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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논설위원
리더가 역사를 만들까, 역사가 리더를 만들까. 미국 역사학자 모식 템킨은 전자는 마키아벨리의 관점이고, 후자는 마르크스 시각이라고 본다. 하지만 미국의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업적을 보면 리더가 역사를 만든다는데 추(錘)가 기운다. 재임 내내 시대를 앞서간 신박한 정책, 제도 개혁을 쏟아냈다. 재정을 풀어 공공일자리를 창출하고 토목사업을 부양한 '뉴딜정책'은 루스벨트의 시그니처 브랜드다. 상호무역협정법을 만들어 자유무역의 초석을 놓았고, 국가산업부흥법을 제정해 최저임금제를 설계했다. 근로시간 상한제, 실업보험, 아동 노동 금지의 기원을 세웠다. 대공황을 파악하지도 대처하지도 못한 전임자 허버트 후버 대통령의 무능과 대비됐다. 당시 미국인들은 대공황을 '후버 공황', 빈민촌을 '후버 빌'이라고 조롱했다. 루스벨트와 후버는 '정치 리더십' 성패의 극단적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AI가 세상을 지배하는 작금, 엔비디아만큼 주목받는 테크기업이 있다. 미 국방부와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에 AI 기반 빅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팔란티어다. 공공 데이터, 군사 정보 등 국가의 가장 민감한 정보를 읽고 해석한다. 팔란티어의 핵심 기술이 데이터를 맥락화하는 온톨로지(ontology)다. 그 독보적 기술이 팔란티어를 시총 2천600억달러(약 360조원) 기업으로 끌어올렸다. 팔란티어 창업자가 피터 틸이다. 글로벌 전자결제 서비스기업 페이팔 창업자이기도 한 피터 틸은 2014년 출간한 '제로 투 원(Zero to One)'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피터 틸 리더십의 요체는 '미래와 정보와 기술을 읽는 지혜'다.

우격다짐의 트럼프 리더십은 루스벨트나 피터 틸과는 격이 다르다. B급, 아니 C급이다. “많은 중국인이 트럼프의 모습에서 문화혁명을 떠올리고 일론 머스크를 홍위병과 비교한다”(뉴욕 타임스). 일당 독재 시진핑 치하의 중국인들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희화화하는 이 역설적 장면은 '선거 민주주의'의 위기와 한계를 웅변한다. '선출된 권력' 트럼프 대통령의 독선과 몽니는 미국 유권자들의 리더십 검증 실패의 후과다.

우리도 검증의 시간을 맞았다. 무능·무도한 리더십을 선택한 과거 실패를 반복해선 곤란하다. 지도자라면 통합의 상징이 돼야 한다. 중용(中庸)의 용기가 필요하다. 극우·극좌 유튜브의 세계나 확증편향에 빠진 리더는 도량발호 확률이 높다. 수도권 일극주의와 이념적 편향을 경계해야 한다. '반공' '진영' '젠더' '종교'를 도구 삼은 갈라치기는 리더의 정체(正體)에 부합하지 않는다. 피터 틸이 미래와 기술을 읽듯 시대를 읽고 민주주의를 해독하고 민심을 읽어야 한다. '선출된 권력'의 합법적 폭주 위험을 늘 인지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군인이 아니라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의 손에서 죽음을 맞기도 한다”('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공저). 베네수엘라 차베스 전 대통령은 사법개혁을 빙자해 대법원을 장악했다.

뉴딜정책은 대공황으로 황폐해진 심상(心想)에 희망을 심었고,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줬다. 루스벨트의 뉴딜(New Deal)은 '새로운 거래'였고 통 큰 사회적 합의였다. 지금 대한민국은 국론 분열, 저성장, 지방소멸, 인구감소, 정치 퇴행의 난제들에 휩싸여 있다. '새로운 거래'로 국민을 통합하고 경제를 고양하며 정치를 혁신할 통섭형 리더십이 절실하다. 이번 대선의 통섭형 후보는 누굴까.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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