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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광훈 소설가 |
어느 따사로운 봄 날, 난 퇴근과 동시에 최근에 교제를 시작한 여자에게 문자를 보낸다. 아양교 근처에서 만난 우린 스타벅스에 들러 아메리카노 두 잔과 케이크 한 조각을 테이크아웃한 다음 유유히 도심을 빠져나간다. 바람이 좋은 곳에서 자동차를 멈춘 다음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둘 만이 다인 공간에서 난 그녀의 라운드 티 사이로 드러난 새하얀 목에 흥미를 느낀다. 짤막한 대화가 끝나고, 우린 카시트를 살짝 뒤로 젖힌 다음 가벼운 키스를 나눈다. 순간, 짜릿하게 전해져오는 전류…. 하지만, 나의 행위는 대부분 여기에서 멈춘다. “왜 그 정도예요?”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난 달리 할 말이 없다. 난 단지 이 정도의 남자인 것이다.
스물한 살 때였다. 난 동그란 얼굴에 키 작은 여자와 사귀고 있었다. 그녀와 나는 수업이 없는 날이면 계명대학교 대명캠퍼스 근처에 있는 한 조그마한 카페에 눌러앉아 하루 종일 '부활'의 노래를 들으며, 시인 황인숙이나 최승자에 관한 가벼운 농담을 즐기곤 했다. 물론 그것만이 우리 둘 사이에 있었던 연애담의 전부는 아니다.
키스….
그래, 우린 세 번째 만남에서야 비로소 키스를 나눌 수 있었다. 아마, 대명공연예술센터 앞에 위치한 조그마한 독립영화관이었을 것이다. 우린 30평 남짓한 공간에 단둘이 앉아 이와이 순지 감독의 '러브레터'를 보고 있었다. 영화가 절정에 가까워졌을 때쯤, 나는 가쁜 숨과 두근대는 가슴을 달랜 다음 그녀의 어깨 위로 오른손을 올렸다. 그리고 어린 소년이 진한 어둠 속에서 통속잡지의 은밀한 부분을 조심스레 읽어나가듯 그녀의 입술 위에 내 입술을 포개었다. 그것은 지금 다시 생각해보아도 아주 멋지고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그녀의 발갛게 달아오른 볼은 그 무엇보다도 부드럽고 따스했다.
키스가 끝난 후, “이건 나의 첫키스야…”라고 그녀를 향해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러자 그녀는, “왠지 그런 것 같았어”라며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 올렸다. 하지만 내가 그녀의 입을 통해 듣고 싶었던 것은 '나도 그래'와 같은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대답이었다.
이후, 우린 한적한 공원이나 대학교 교정 같은 곳에서 가벼운 스킨십을 나누었다. 물론, 지금처럼 세련되고 프라이빗한 공간이 주위에 즐비하였더라면 우리의 청춘은 그토록 안타깝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너무 밝히는 거야?”
한번은 그녀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백년설'이란 대덕산 아래, 한 조그마한 카페였을 것이다.
“아니. 스물한 살의 남자라면 너 같아야 정상인 것 아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후 우린 열아홉 번을 더 만났고, 그리고 일곱 달을 채 채우지 못하고 헤어졌다. 헤어진 후 다시 몇 번의 어색한 만남이 있었고, 그 어색함을 견디지 못해 결국 산산이 부서졌다. 나에게 완전히, 아니 딱 둘로 나눠지는 것은 없다. 아쉬움과 그로 인한 미련… 항상 그런 미세한 전류가 나의 주위를 부질없이 맴돈다.
“응, 나. 그냥 생각나서 전화해봤어. 괜찮다면… 우리 한 번 볼 수 없을까? 저, 정말, 잠시만이라도 말이야….”
우광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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