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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순 〈전〉경북대학교 초빙교수 |
그러나 여전히 한국 정치는, 희망과 기대보다는 한숨과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잘못에 대한 용기 있는 반성과 책임보다는, 뻔뻔함과 회피로 일관하는 정치인들이 부지기수다. 합리적인 정책 대결보다는 경멸과 비난이 난무하고,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공방전이 뜨거웠다.
미국의 신학자이자 윤리학자인 라인홀드 니부어는 도덕적 딜레마를 설명하면서 '차악의 선택'이 '도덕적 선택'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The second worst', 최악을 피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덜 나쁜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Good, Better, Best'가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것은, 'Worst'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 투표'인 셈이다. 어쩌면 민주주의의 선거는 계속 이러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미국 대선에서도 국민적 선택을 차악으로 평가하는 경우는 다반사다. 이번 대통령 선거 역시, 어떤 후보가 좋아서, 더 좋은 후보, 최상의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의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유학자이자 정치 사상가였던 맹자, 그는 '사단(四端)', 즉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통해 사람의 도리를 가르쳤다. 사단은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남에게 사양하는 마음, 옳음과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을 말한다. 이러한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사단은 우리 공동체를 유지하는 상식이자 근간이며 인간 존중의 마음이다. 맹자가 왕의 덕목으로 이익보다 더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인'(친근함)과 '의'(공정함)라 한 것도 정치에서 백성에 대한 존중과 의로움, 도덕성을 중히 여긴 까닭이다. 군주는 도덕적으로 통치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때는 백성이 군주를 교체할 권리가 있다고 하였다. 보수는 전통을 지키고 도덕성을 회복하여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가치이다. 맹자의 '왕도정치'에서 측은지심과 인의를 강조하는 것은 보수의 실현을 위한 것이다. 진정한 보수정치라면 맹자의 사단과 인의의 마음가짐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위대한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그의 에세이 'The Conduct of Life'에서 진정한 진보는 사회나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개인의 도덕적, 정신적 성장에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인간의 삶과 도덕, 자기 수양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시대의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하며, 개인의 도덕적 완성이 사회적 진보의 핵심임을 주장했다. 결국 진보도 보수도 개인의 도덕적 완성을 떠나서는 실현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치가 진정한 진보와 보수로 거듭나, 옳고 그름을 바로 알고, 존중을 실현하며, 공동체를 회복해 평화와 행복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고뇌에 빠진 국민의 전략적 선택은 무엇일까. 최악을 막기 위한 차악의 선택이 어디로 향할지, 국민의 역사적 결심이 궁금해진다.
배정순 〈전〉경북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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