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易地思之] '지역 소멸' 문제가 소멸된 대선

  •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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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6-03  |  수정 2025-06-03 07:18  |  발행일 2025-06-03 제22면
서울에 막힌 지역언론 목소리

승자독식의 진영논리 폐해로

지역내서도 촉구 여론 약해져

집단과 개인 이익 추구 상충 속

지역민 '이중구속' 상태 처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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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대선 기간 중 '지역 소멸' 문제는 후순위에 있다. 언론 보도를 보면 그렇다… 대선 후보들이 '지역 소멸'의 심각성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이번 대선 기간 중 뇌리에 남아있는 '지역 소멸' 대책이 있나? 아마 없을 것이다. 대선 후보들이 지역 소멸을 중점적으로 논하지 않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언론이 묻지 않기 때문이다… 왜 대선 후보에게 질문하지 않을까? 서울 기자단이 질문권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남도민일보 기자 김연수가 나흘 전 언론 문제를 다루는 언론전문지인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칼럼에서 한 말이다. 지난 5월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16주기 추도식이 열렸을 때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봉하마을 묘역 참배 후 권양숙 여사를 예방했다. 이거야말로 유력 대선 후보에게 지역 소멸 문제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김연수의 말을 들어보자.

“현장에 있었던 지역언론 취재기자들은 질문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당연히 배제됐다. 결국 이재명 후보를 코앞에 두고 서울 중앙당에서 배포하는 보도자료를 받아서 기사를 써야 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중략) '서울 기자단'은 취재 편의를 보장받기 위해 지역에 갈 때도 '완장'을 찬다. 지역 기자로서 이따금 깊은 무력감을 느낀다. 지역에서 지역민으로서 묻고 싶은 말은 대선 후보에게 쉽게 가닿지 못한다. 그리하여 또 한 번, 지역은 선거에서 밀려나고 만다.”

이대로 좋은가? 이런 잘못된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수십년째 나오고 있지만 달라진 건 전혀 없다. 그런 비판의 목소리를 지역언론만 낼 뿐 완장을 찬 서울언론은 지역소멸에 대해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자면, 서울 중앙당들은 서울언론의 목소리만 경청할 뿐 지역언론의 목소리는 무시해도 괜찮다고 보는 오만함에 찌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울언론이 평소 지역 소멸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 건 아니다. 일부 서울언론은 지역 소멸 문제를 가끔 특집 기사로 다룬다. 찬사를 보내도 좋을 기사들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단지 그것뿐이며 실천에 약하다는 점이다. '위기'를 강조하는 사건·사고의 관점은 두드러지지만, 그건 실천으로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역 소멸 문제의 해결은 정치의 몫이건만, 지역 소멸과 정치는 언론사 내 분업체제로 인해 서로 만나지 못한다. 즉, 대선을 보도하는 기자는 지역 소멸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거나 약하고 지역 소멸을 보도하는 기자는 대선 취재에 근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언론의 대선 보도가 지역 소멸의 문제를 크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다룰 것을 요구하는 수요가 지역 내에서조차 없거나 약하다는 데에 있다. 이게 바로 이른바 '진영논리'의 폐해다. 진영논리는 이념을 내세우는 듯 보이지만, 실은 진영의 밥그릇에 목숨을 거는 경제적 문법이다. 거대정당 간 경쟁은 '전부 아니면 전무'라고 하는 승자독식 원리에 따라 이루어진다.

승자독식은 이분법과 한몸이다. 이분법은 불가피할 때도 있고 필요할 때도 있지만, 현재 한국사회를 집어 삼킨 이분법은 그런 게 아니다. 온몸에 체화된 습관이요 신앙이다. 이분법은 자신이 속한 진영의 이해득실 차원에서 세상을 보고 판단한다. 이른바 '내로남불'이 정치권의 법칙일 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인이 준수하는 생활문법이 된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분법 전쟁을 수반하는 승자독식 체제는 한국 특유의 연고 네트워크와 결합하면서 전체 국민의 절반 이상을 이분법 소용돌이로 끌고 들어간다. 한국 사회의 최대 문제는 바로 이런 '밥그릇 전쟁'으로 인한 '분열 디폴트(기본 설정값)'에 있는 것이지, 그 어떤 진영이 승리하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어느 한 진영이 상대 진영을 완전히 압도해 버린다면 '분열의 사회적 비용'은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겠지만, 그게 불가능한 이상 그 어떤 정치와 개혁도 분열 비용을 넘어서지 못하는 비극이 발생하고 만다.

지역 소멸을 극복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요구되며 그로 인한 이익은 전 국민이 공유한다. 반면 진영 전쟁에서의 승리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을 한 진영이 독식한다. 대선은 화려한 명분을 동원하지만 그 본질은 한 진영의 정치경제적 자원 독식을 위한 전쟁이다. 이익을 모두가 다 공유하는 지역 소멸 극복을 위한 장기적인 노력보다는 빠른 시간 내에 이익 배분에 참여할 수 있는 진영전쟁에서의 승리가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지역의 이익과 지역민의 이익이 같을 걸로 생각하지만, 그게 꼭 그렇진 않다는 데에 국가적 비극이 있다. 지방대학이 쇠락하거나 죽는 건 지역의 손실이지만, 자식을 서울 명문대에 보내는 건 지역민의 이익이다. 각 가정이 누리는 이익의 합산이 지역의 이익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손실이 되는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가 일어나는 것이다. 심지어 서민층 학부모마저도 자식을 서울 명문대에 보내는 꿈을 꾸기에 서울로 인재를 보내는 지역발전전략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교육뿐만 아니라 재테크 분야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재테크 특히 부동산 투자에 있어서도 서울에 투자하는 게 지역에 투자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수익률을 누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의 집단적 이익 추구를 위해 지역 소멸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라고 요구하는 게 먹혀들긴 어렵다. 이렇듯 지역민은 집단적 이익 추구와 개인적 이익 추구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오락가락하는 '이중구속(double bind)' 상태에 처해 있다.

대선에서 '지역 소멸' 문제가 소멸된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나도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지역민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게다. 아니 어쩌면 지역이야 어찌 되건 말건 중앙 정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자기희생적인 애국심 때문일 수도 있겠다. 지역을 잊을 걸 강요한 대선이 오늘이면 끝난다는 사실이 차라리 반갑게 여겨지는 건 그런 대국적인 애국심이 없는 탓일까? 대선이 국가 중대사를 다루지 않은 채 정략적 진영 대결의 이벤트로 소모되는 걸 구경해야 하는 건 이젠 지겹다 못해 역겹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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